<토지> 의 작가 박경리(1926~2008)가 1960년대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 <녹지대> 가 47년 만에 단행본(전2권ㆍ현대문학 발행)으로 묶여 나왔다. 녹지대> 토지>
<녹지대> 는 박경리가 <시장과 전장> 을 출간한 후 <파시> 를 동아일보를 연재하던 무렵인 1964년 6월 1일부터 1965년 4월 30일까지 부산일보에 동시에 연재한 작품. 젊은 세대의 사랑을 다룬 <녹지대> 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으나 '통속 소설'로 치부돼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이번에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녹지대> 파시> 시장과> 녹지대>
소설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 댁에 기거하는 20대 초반의 자유분방한 여성 하인애를중심으로 60년대 젊은이들의 다양한 사랑의 풍경을 낭만적이면서 파격적으로 그린다. 제목이기도 한 '녹지대'는 당시 반항적 젊은이인 비트족들이 모이는 서울 명동의 지하 음악살롱으로, 하인애가 대학을 포기한 뒤 드나들며 시인의 꿈을 키우는 곳이다. '이름만 갖고 팔아먹는' 기성시들에 대항하는 시를 쓰겠다는 당찬 하인애의 아킬레스 건은 가출했다가 만난 김정현이란 남자. 하인애는 김정현에게 절대적 사랑을 바치지만,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한 여성이 얽혀 삼각관계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소설은 이밖에도 인애의 사촌 동생인 부유한 여대생 하숙배가 유부남과 맺는 불륜의 사랑, 인애의 친구이며 '양공주의 딸'이라는 콤플렉스를 지닌 윤은자가 유복한 집 자제와 겪는 연애 등 다양한 사랑의 서사를 보여준다. 자유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이상과 사랑을 좇다 좌절하는 모습은 50년 전 쓰여진 소설임에도 현대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그동안 묻혀 있던 이 소설을 서울대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출간을 주선한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일종의 풍속소설, 세태소설로서 한 시대의 삶의 양상을 그 육체성의 측면에서 묘사해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라며 "연애담 속에서 작가는 6ㆍ25전쟁의 상처를 겪으며 성장한 새로운 세대의 심리와 지향을 부조해 넣으려 했다"고 평가했다. 박경리 연구자인 김은경 KAIST 대우교수는 작품 해설에서 "박경리 작가의 심원한 정신세계를 소설로 풀어내는 주요한 버팀목으로 사랑 서사가 자리하고 있다"며 "이 소설은 '치열한 사랑'을 담은 '젊음'의 문학과 현실에 뿌리를 내린 유연한 사랑을 담은 '원숙함'의 문학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고 썼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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