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승리한 후보가 반드시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거나,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 공화 양당의 경선이 가장 먼저 아이오와에서 열린 것은 1972년이다. 이후 36년 동안 현직이 아니면서 아이오아 경선에서 1위를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 후보는 2000년 조지 W 부시가 유일하다. 오히려 아이오와 코커스의 열세를 딛고 당 후보 또는 대통령에 오른 후보가 훨씬 많다. 80년 로널드 레이건은 2위, 88년 아버지 부시는 3위를 하고 대통령에 당선됐고, 2008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4위를 했지만 공화당 후보가 됐다. 그래서 아이오와 코커스는 당 대선 후보를 결정한다기 보다 경쟁력있는 대권 주자들을 추려내는 역할이 더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아이오와 코커스가 관심을 모으는 것은 첫 경선이란 상징성 때문이다. 아이오와에서 승리한 후보는 전국적인 조명을 받게 되고, 초반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장기 레이스인 경선에서 자금과 조직을 끌어들이는데도 유리하다. 경선주자들이 아이오와에 전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런 아이오와 효과에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의 또 다른 매력은 이변의 출발점이란 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아이오와에서 눈물까지 흘린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누른 이변 덕분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4년 전 다른 후보들이 쓴 선거비용을 합한 것보다 많은 1,000만달러를 쓰고도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에 무려 10%포인트나 졌다. 아이오와에서 바람몰이에 성공한 후보는 대통령 당선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지미 카터 대통령이 이런 경우다.
대선 본선에서 아이오와 대의원은 전체 대의원 538명 중 7명에 불과하다. 숫자로 본 아이오와의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아이오와 유권자들은 미국 정치 1번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어느 주보다 지지후보 선정에 신중해서 지난 3차례 대선에서 표심이 계속 바뀌었다. 2000년에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를, 2004년에는 공화당 부시 후보를, 2008년에는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각각 지지했다. 이태규=워싱턴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