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달 31일 밤 11시 22분에야 가까스로 올 예산안을 본회의 처리했다. 그나마 표결에는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 의원 178명이 참석했을 뿐,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등은 론스타 국정조사 무산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퇴장해 합의처리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이로써 18대 국회는 임기 중 단 한 번도 예산안을 합의 처리하지 못한 불명예를 역사에 남기게 됐다.
본회의에 앞서 여야가 정부안에서 7,000억원을 순삭감한 325조4,000억원의 수정안에 합의했을 때만 해도 순조로운 처리가 기대됐다. 특히 대학등록금 경감(3,323억원) 일자리 지원(4,756억원) 등 복지와 일자리 사업 관련 예산을 3조2,000억원 늘리고, '형님예산'으로 알려진 해외자원개발 출자(1,600억원)나 4대강 관련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2,000억원) 등에서 3조9,000억원을 감액해 예산 조정 자체엔 여야간 남은 이견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론스타 국정감사와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 법안 처리가 발목을 잡았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인수 과정의 적정성을 따지자는 국감요구나 언론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줄 미디어렙 법안 처리가 중요치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로 야당이 예산안 처리를 거부해 퇴장하고, 그 와중에 여당이 과세표준 3억원 초과에 38%의 과세 최고구간을 신설하는 어정쩡한 '부자증세'법안까지 임의로 처리한 건 정치권 전체가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예산안은 국가경영의 최종 청사진이라는 점에서 적정한 심의와 처리는 국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세제 혜택을 누구에게 어떻게 얼만큼 주느냐, 투자와 지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가계 생활과 기업 경영에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이 미친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예산안 처리를 늘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았고, 변칙과 날치기가 매번 되풀이돼왔다. 정치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19대 국회부턴 예산안도 투명한 심의, 기한 내 합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원칙으로 정상 처리하는 새 관행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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