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그 어느 해 보다 선거가 많은 해이다. 미국, 중국 등 주요 2개국(G2)을 포함해 전세계 20여개국에서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결정하는 선거가 이처럼 한꺼번에 많이 치러지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다.
세계의 선거 가운데 최대 이벤트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지 아니면 공화당이 4년 만에 권력을 되찾을지가 관심사다. 민주당에는 경쟁자가 없어 오바마 대통령이 일찌감치 후보로 정해진 상태다. 공화당은 3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시작으로 6월쯤 후보를 뽑는 주별 선거를 마무리한다. 7명이 각축 중이지만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앞서 있다.
운 좋은 오바마, 공화 후보에 적수 안보여
오바마는 취임 초기 70%의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나 지금은 4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가 지지율을 떨어뜨렸다. 현재 실업률이 8.6%나 돼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그래서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오바마의 지지자들도 많이 등을 돌렸다. 전문가들은 상식적으로는 오바마의 재선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공화당에는 오바마를 앞서는 주자가 아직 없다. 현직의 프리미엄에다 자금과 조직력에서도 오바마가 공화당 주자에 앞서 있다. 그나마 근접 경쟁을 하는 주자는 롬니뿐이다.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을 공화당이 높게 보는 것도 자기 당 주자 중에 오바마의 적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공화당에서는 롬니와 깅리치조차 탐탁한 주자가 아니다. 롬니는 보수 진영이 이단으로 간주하는 모르몬 교도이고 중요 이슈에서 진보적 태도를 보여 공화당 유권자의 신뢰가 높지 않다. 깅리치는 사생활 문제로 인해 여성 표심을 얻기 힘든데다, 재산형성 과정에도 약점이 있다.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가 무난하지만 토론 실력이 뒤져 말 솜씨가 뛰어난 오바마에겐 역부족일 수 있다. 공화당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불출마 선언 이후에도 여섯 차례나 출마 권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화당 일각에선 당 후보가 미덥지 못할 경우 제3후보를 추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정책 연속성이냐 보수화의 길이냐
오바마는 운이 좋은 정치인이다. 2004년 상원의원에 처음 출마했을 때는 당내 경선자와 공화당 경쟁자가 가정폭력, 변태 성행위 문제 등으로 자멸했다.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거함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초반에 몰아붙여 승리를 굳혔다. 대선 본선에서 경쟁자로 나온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당시 유권자들이 원했던 경제 이슈에 관심이 적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오바마는 이번에도 운 좋은 정치인이 될 공산이 크다.
재선에 성공할 경우 오바마는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소신 있고 연속성 있는 정책을 펼 수 있다. 그러나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의 운신 폭이 더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오히려 정치 갈등이 경제 등 현안의 발목을 잡는 현상을 반복할 우려가 있다.
공화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미국은 지금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할 수 있다. 오바마가 외교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만큼, 공화당은 국외 문제보다 건강보험 개혁 등 국내 문제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동, 이란, 중국 문제에서 더 강경해질 수도 있다. 새 공화당 대통령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전폭적 지지를 바탕으로 지금의 오바마와 비교하기 어려운 파워로 독주할 수 있다.
한미관계, 한국 대선 결과가 더 중요
한국 정부는 오바마의 재선을 선호할 수 있다. 한미동맹이 오바마 정부에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미국에서 나오고, 북한 문제에서도 '물샐 틈 없는'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이 한미관계에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공화 주자들이 북핵 문제에 매우 강경해 조지 W 부시 정부 초반 대북정책이 반복될 가능성도 높다. 김정은 체제의 조기 연착륙을 바라는 오바마 정부와 달리 김정은 흔들기를 통한 북한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같은 시기에 권력교체가 이뤄지기 때문에 한미 현안 조율에 상당 시일이 걸리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가 장기 전략 속에 이뤄지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다고 즉각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워싱턴 외교가의 한 인사는 "미국은 오히려 한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한미관계가 요동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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