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은 그야말로 기적처럼 이뤄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 빌 게이츠가 웃으며 눈 앞에 서 있었다. 다들 "빌 게이츠를 어떻게 만나겠느냐"며 "차라리 가수 소녀시대를 만나고 싶다고 하라"고 했다. 하지만 신주환(18ㆍ세종과학고 2)군은 자선재단을 설립해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한 빌 게이츠를 꼭 만나고 싶었다. 소원은 실현 여부를 떠나, 간절히 바라는 희망 그 자체이니까.
빌 게이츠는 주환이에게 "어릴 때부터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선활동을 하게 됐다"며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게 내 삶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주환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컴퓨터 등 과학의 발전이 아픈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거다. 희망을 잃지 말고 즐겨라."
지난해 8월19일 미국 시애틀 MS 본사에서 45분 동안 빌 게이츠를 만나고 온 주환이가 새해에 대학생이 된다. 성균관대 전기전자컴퓨터계열에 수시 전형으로 합격, 4년 동안 장학금까지 받게 됐다. 백혈병을 딛고 받은 합격 통지서라 주환이의 기쁨은 더 크다.
그에게 병마가 덮친 건 2009년 4월. 수학과 과학 과목에 뛰어났던 주환이가 세종과학고에 입학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처음엔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힘이 들어 기운이 없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혼자 걸을 힘조차 없어 병원을 찾았더니 백혈병, 그 중에서도 최고 위험군이라고 했다. 그 전에 병치레 한번 한 적 없었던 주환이는 오히려 덤덤했다고 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속 이야기 같았어요."
병원 무균실에서 집중 치료가 시작됐다. 주환이는 백혈병 환자들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한 살밖에 안된 아기부터 한창 뛰어놀 예닐곱 살 아이들까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병과 싸우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그러다 끝내 세상을 등졌고, 또 어떤 아이들은 조혈모세포가 일치하는 조혈모세포은행 등록자를 찾았지만 기증을 거부해 발만 동동 굴렀다. 주환이는 "술 담배를 하는 어른들이 아프면 이유라도 있지만, 아무 죄도 없이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너무 가여웠다"며 "항상 내 일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아픈 아이들을 보며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한 백혈병 아동의 보호자가 주환이에게 아픈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메이크어위시 재단을 알려줬다. 과학을 좋아하는 주환이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성공의 척도로는 잡스가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게이츠의 자선활동이 더 존경스럽고 궁금했다. 만남 신청 때부터 다들 현실성 있는 인물로 하라고 그를 말렸고, 만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는 게이츠를 만났다.
그리고 주환이는 꿈이 더 뚜렷해졌다. "게이츠가 의학기술이 컴퓨터과학을 기반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며 그 분야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얘기했는데, 이제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의학 분야와 접목시켜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2012년 새해, 빌 게이츠와의 만남보다 더 간절한 소원을 이루기 위한 주환이의 여정은 이제 시작됐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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