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수백억대 재산가를 납치해 108억원을 빼앗은 뒤 동남아 일대에서 도피 행각을 벌이던 피의자 김모(53)씨가 3년반 만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김씨가 지난 10월 말 발생한 말레이시아 한인회 부회장 실종 사건에도 깊숙이 연루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청 외사수사과는 2008년 해외로 도주했던 김씨를 지난 28일 마카오에서 검거, 30일 국내로 압송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2008년 3월초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부동산임대업을 하던 재력가 A씨(56)를 납치한 뒤 3개월가량 감금, 부동산을 담보로 78억원을 대출받고 예금 30억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A씨에게 필로폰을 강제로 투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김씨는 A씨의 고급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던 A씨의 대학동창 이모씨 등과 공모해 A씨를 술자리로 유인했다. 이들은 A씨에게 마약을 투여한 뒤 "신고하면 너도 마약사범으로 경찰에 붙잡힐 것"이라고 위협했다.
80여일 후인 2008년 5월 "혼자 살고 있는 오빠가 오랫동안 집을 비운 것 같다"는 A씨 여동생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A씨 명의의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한 결과 부동산을 담보로 78억원이 대출된 사실을 확인, 수사에 나섰다. 수사 착수 직후 A씨는 풀려났고 공범 3명도 체포됐다. 하지만 주범 김씨는 이미 필리핀으로 달아난 뒤였다.
위조여권으로 필리핀, 말레이시아, 마카오 등지를 옮겨다니며 신출귀몰하는 듯하던 김씨는 지난 26일 마카오의 작은 한식당에서 꼬리가 잡혔다. 주문한 된장찌개를 기다리다 갑자기 일어서 식당을 나가는 김씨를 수상하게 여긴 교민이 경찰에 신고한 덕분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식당 내부를 둘러보던 김씨가 자신의 얼굴 사진이 인쇄된 수배 전단을 보고 급히 자리를 뜨는 것을 본 교민이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곧바로 인근 호텔, 카지노 등에 추가로 수배 전단을 뿌렸고, 28일 '김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W호텔에 투숙 중'이라는 제보가 주재관 휴대폰으로 들어오자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김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조사 중인 서울 수서경찰서는 말레이시아 한인회 간부 실종사건에도 김씨가 연루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쿠알라룸푸르 한인회 부회장 K(53)씨는 지난 10월30일 김씨와 함께 아파트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힌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CCTV 화면에는 2시간 뒤 김씨만 혼자 나오는 모습이 촬영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나올 때 얼굴에 반창고를 붙인 것으로 보아 격투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큰 가방을 가지고 나와 벤츠 승용차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K씨의 휴대폰 신호가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끊긴 점으로 미뤄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하지만 김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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