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2011년 마지막 날 칼럼을 쓰게 됐다. 이 기회에 뭔가를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생각하던 차에 김기덕 감독의 신작 두 편을 보게 됐다. '김기덕 신작열전'이 열리던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행사 마지막 날인 21일에 '아리랑'과 '아멘'을 연이어 관람했다.
두 작품은 이미 올해 칸영화제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됐고 행사 전 시사회도 있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모두 놓쳤기에 마지막 기회라도 잡으려 부랴부랴 달려간 터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만감이 교차했다. 알다시피 김 감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감독이다.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포함해 각종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그의 16번째 작품이자, 한국영화계와 자신에 대한 독설로 화제가 됐던 '아리랑' 역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수상함으로써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한국 감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 불화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한국사회와의 관계가 그래왔다. 국제적 명성을 무색케 하는 초라한 국내 흥행성적, 여성평론가들이 쏟아냈던 인신공격에 가까울 정도의 혹평들, 그와의 작업을 껄끄러워 하는 메이저 회사들을 고려할 때 그는 타협을 모르거나 거부하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나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여성 캐릭터들은 분명 문제적이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의 관점은 차치하고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가 묘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판타지의 산물에 가깝다. 남성의 욕망을 해소시켜 주는 성적 대상 혹은 상처투성이인 남성을 보듬어 줄 구원의 여인, 즉 창녀 아니면 성모마리아 같은 여성상 말이다. 여성 관객이 공감할 수 없는 여성 캐릭터를 호평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작금의 한국영화계가 돌아가는 상황(투자자에의 과도한 주도권 쏠림현상)에서 한국영화계와 자신의 치부를 거리낌 없이 까발리는 '아리랑'까지 접하고 보니 김 감독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영화감독이 아닐까 반문하게 된다. 근래에 이 정도의 지명도를 갖고 있는 감독 중에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엘리트 아우라도 풍기지 않으면서 개성 있는 영화를 17편이나 만들어 온 감독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거의 없는 까닭이다. 관객, 투자자, 영화평론가는 사실 감독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존재들이다. 특히 예술영화를 만든다고 자부하는 작가감독에게 저조한 흥행성적은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전문적 담론 구성의 핵심 역할을 하는 평론가의 외면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영화평론의 대중적 영향력은 줄어들었을망정 작가감독 대부분은 영화평을 여전히 의식한다. 김 감독은 이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초연한 편이었던 것 같다.
영화계 인맥이나 권력 네트워크 구축에 비교적 무심했다고 해야 할까. 한 쪽에서는 이걸 오만, 또 다른 쪽에서는 순진함으로 규정하는데 어쨌든 이런 '독야청청'이 결국 그를 한국영화계의 왕따로 만든 셈이 되고 말았다. 3년간의 공백 끝에 첩첩산중에서 혼자 연기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완성한 '아리랑'은 이렇게 절대고독과 외로움에 지쳐버린 그의 절규에 가깝다. 또 그런 자학적 작업을 통해서라도 너무나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그의 영화에 대한 열망에서 진심을 느끼지 않을 도리도 없다.
아직도 그의 여성 캐릭터에 호감을 가질 순 없지만 모름지기 독립영화감독 혹은 작가감독이라면 '외교력'보다는 이런 '결기'로 승부하는 게 맞다. 난 더 이상 그를 미워하진 않기로 했다.
김선엽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