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한 해가 시작됐다. 해마다 신년 벽두에는 근하신년의 축복과 덕담 속에 희망을 키워가는 다짐을 하지만, 올해는 그런 도움닫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것처럼 생각된다. 2012년 임진년은 전 세계적으로 격동의 1년이 될 것이며, 우리나라의 명운을 결정하는 신기원의 연도가 될 것이다. 4월 11일 총선은 3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그로부터 8개월 후인 12월 19일에는 제 18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1992년 이후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니 나라와 국민의 총력과 관심이 이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은 단순히 1회적 의미를 갖는 선거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고 사회의 틀을 잡는 중대한 선거라는 점에서 정초(定礎)선거(foundation election), 주춧돌을 놓는 선거라고 의미가 규정되고 있다. 지난해 무성했던 개헌 논의가 아무 결과물 없이 해를 넘김에 따라 헌정제도는 1987년 체제가 유지되게 됐지만, 역사의 발전추세나 시대정신이라는 점에서 18대 대선은 정초선거라고 불러 마땅하다. 더욱이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선 이후 무소속ㆍ시민세력의 약진과 '안철수 현상', 이에 따른 정당정치의 위기로 정치적 격변이 빚어질 전망이다.
이제 성장경제에서 공존경제 시대로
2007년 대선에서는 '경제 전문가'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으며 민주화와 인권 면에서 오히려 후퇴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대선에서도 경제는 핵심 의제가 되겠지만, 5년 전과는 그 내용이 판이해 보인다. 747공약(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7대 경제대국 진입)으로 대변되는 성장경제에서 분배와 복지, 양극화 해소, 부의 사회적 책임, 일자리 창출, 경제정의가 강조되는 공존경제로 바뀌고 있다.
올해의 최대 경제 관심사는 2008년 '리먼사태'로 드러난 구미 선진국 경제체제의 조정 과정이 일찌감치 예고된 '2012년 위기'를 넘을 수 있느냐 여부다. 유럽 재정 위기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로권 주요 채무국의 채권 상환기일이 몰려 있는 3월 말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느냐가 첫 관문이며, 미국 일본의 재정적자 감축방안 구체화 등도 중요하다. 글로벌 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 중국도 위기의 경계선을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는 형국이다.
선진국 경제의 동요는 세계적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고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직접적 충격파가 닥칠 것이다. 국내 수출기업의 생산성 향상 노력이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국내 투자 감소와 고용 감축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미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3%대 중반으로 추락했지만, 수출과 투자는 물론 내수소비에 이르기까지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게 진짜 문제다. 소득 정체 속에 어느새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 경기의 연착륙이 큰 과제다.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해 가계의 부채 감당 능력이 붕괴되지 않도록 유연한 대책이 요구된다.
게다가 정치일정과 맞물린 '부자증세'나 '복지 확대 요구'등을 둘러싼 논쟁이 심화할 전망이다. 계층 간 갈등 구조를 부추길 수 있는 '부자증세'나 '버핏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도 서둘러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 마땅하다.
국내외 경제여건이 이처럼 열악해지는 2012년에 세계 각국은 선거와 리더십 교체로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우선 김정일 사망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김정은 후계체제는 단기적 안정이 예상되나 중ㆍ장기적으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정부는 한반도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 지켜봐야 하지만, 변화하면 돕겠다는 소극적 입장에서 탈피해 북한의 질서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대북 영향력이 더욱 커진 중국과 소통을 늘리고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위한 공감대를 넓혀 가야 한다.
전 세계적 경제 불황ㆍ전 세계적 선거
북한은 세습으로 리더십이 교체가 끝났지만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한반도에 영향력이 큰 나라 모두가 선거와 권력 교체상황에 처해 있다. 세계적 경제난 해결의 열쇠를 쥔 주요 20개국(G20)과 유로존에서만 대선을 치르는 곳이 10개국이나 된다. 유로존 17개국 중에서는 스페인 핀란드 프랑스 슬로베니아 등 4개국이 대선을 치른다. G20에서는 한국과 미국 프랑스 러시아 인도 멕시코 터키등 7개 국가에서 대선이 실시된다. 일본의 경우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체제가 불안한 상태이며 중국은 10월쯤 시진핑(習近平)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갖고 있는 총서기 직책을 물려받아 향후 10년 나라를 이끌어가게 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1년의 인물로 시위자(Protester)를 선정했다. 아랍의 재스민혁명을 이끈 시위는 민주화 욕구를 확산시켰고,'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99% 대 1%라는 대립과 단절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번졌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2012년의 인물은 투표자(Voter)가 될 것이다. 복지 욕구가 분출하고 저출산ㆍ고령화의 속도가 세계에 유례없이 빠른 데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로서는 '좋은 정책 바른 인물 옳은 선택'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희망ㆍ용기 잃지 않는 '투표자의 해'
양대 선거와 맞물려 점증하고 있는 복지 확대요구를 정책적으로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가도 나라의 흥망을 가를 중요한 변수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선심정책의 남발은 경제의 토대와 활력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무책임한 공약이 남발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하며 정부는 경제의 성장잠재력과 재정건전성을 사수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면 답답하고 가슴 조이는 악재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 동안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민주화 산업화 문민화를 이루어 '무역 1조달러 달성'등 눈부신 성과를 올리며 꾸준히 성장해왔다. 여수엑스포 런던올림픽 등 국민들의 가슴을 활짝 펴게 할 수 있는 좋은 일들도 많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결코 잃지 말고 임진년 흑룡의 해를 활기차고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가자. 힘과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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