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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120원과 1000원의 행복

입력
2011.12.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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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도운 것일까. 지난주 한국일보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사연이 소개됐다. "꼬깃한 봉투에 든 장학금 100만원에 눈물이 차오릅니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아주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일용직 청소원들을 위해 청소아줌마 노동조합을 만드느라 애를 썼고, 그러자 그 아줌마 60여명이 형편이 어려운 그를 위해 장학금 100만원을 만들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와 함께 실려 있는 사진이 참 멋있다. 한 손에 꼬깃한 봉투를 쥐고 한 손으로 눈가를 훔치는 학생. 한 손으로 겸연쩍은 듯 이마를 만지며 한 손으로 학생을 감싸는 아줌마. 기사에서 학생은 23세, 아줌마는 64세라고 했다. 차오르는 눈물을 숨기려고 얼굴을 가린 하얗고 긴 손가락 학생의 손, 적은 돈이어서 미안해하며 얼굴을 살짝 가린 거칠고 햇볕에 그을은 노동자의 손이 있었다. 이맘때면 으레 등장하는 수십~수백 억원의 기증 행사, '남의 돈'을 옮겨주며 거창한 플래카드로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다웠다.

받는 이보다 주는 이의 큰 기쁨

송년회를 겸하여 대학 내 청소원 아줌마들이 급히 만든 '꼬깃한 봉투'였다. 그들은 학생이 만든 노동조합 덕분에 시간 당 120원의 임금이 늘어난 데 대한 보답으로 갹출했던 모양이다. 학생은 "마음이 복잡하고 눈물이 차오르지만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을 뗐고, 아줌마들은 "아니야, 우리가 더 고마워"라고 외쳤다고 한다. 누가 누구에게 더 감사하고, 누가 누구에게 더 고마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올해엔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가꾸어 나가고 싶다. 학생의 감사함이든, 청소원 아줌마의 고마움이든 아무래도 좋겠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소유다. 그 소유를, 그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는 것, 끊임없이 타인과 나누는 것, 그럼으로써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 나는 그것을 참 삶이라고 믿는다. 강원 원주시에서 밥상공동체와 연탄은행을 꾸려가고 있는 허기복씨의 책 은 마지막을 그렇게 매듭짓고 있다.

그는 207페이지에 이르는 책의 마디마디에서 나눔의 행복을 말한다. 배고픈 이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차려주었을 때 그것을 먹는 사람이 갖는 기쁨과 만족감보다 그것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의 행복과 즐거움이 훨씬 더 컸다고 말하고 있다. 야속하게 표현하자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을 위한 밥상을 차리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남을 위한 반찬을 준비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밥상공동체와 연탄은행을 만드느라 1,000원씩 모금하러 다녔을 적에 "1,000원을 기부한 사람은 1,000원이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 보였던 분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버려진 빈 병과 폐지를 모으는 사람들은 선뜻 꼬깃하게 간직한 1,000원을 내주었으나 그 병과 그 종이를 제조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이 안정된 후에…"라며 1,000원 주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소박한 손 모아 세상을 바꾸자

시간 당 120원씩의 임금이 늘어나면 무엇을 더 챙길 수 있으며, 호주머니에서 1,000원의 돈이 빠져나간다면 무엇을 더 잃어버리게 될까. 먹고 살기가 특별히 어려웠다는 지난해에 우리는 유난히 '120원에서 1,000원까지의 행복'을 더 많이 보았다. 수조 원의 이익금에서 마지못해 떼어낸 몇 억 원의 사회봉사 기부금보다 120원이나 1,000원을 모아서 만든 '꼬깃한 봉투'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주변을 변화시켰던 한 해였다.

달리 살펴보면 지난해의 정치도 그랬던 듯하다. 120원짜리 유권자, 1,000원짜리 시민들이 힘을 모아 세상을 바꿔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지 않았던가. 올해도 마찬가지일 터이고,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여전히 누가 누구를 도와주는 건지는 알 필요가 없을 게다. 뜬금없이 한마디 붙인다. 그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참 아프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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