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60년 만에 찾아온 흑룡의 해라지. 용띠인 엄마는 용띠인 나와 더불어 용띠 삼재가 끝났다며 뭔가 좀 들뜬 눈치였다. 60년 전 흑룡의 해에 태어난 엄마, 평생 자식들만 쳐다보고 살았으니 남은 희망 또한 그 방향일 텐데 어쩌나, 한해살이 궁리는커녕 뉴스 보다 말고 욕이나 해대는 딸년인데.
그러니까 제발 그 욕 좀 하지 말라니까! 욕, 그래 작년 이맘때의 내 결심은 욕을 하지 말자였지. 나 시원하자고 내뱉는 가래가 남에게 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수많은 사건 사고를 목도한 우리에게 욕이 있어, 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 적 많았나.
작심 3일일지언정 올해도 나만의 사소한 다짐 같은 걸 하나 새겨둘까 하여 다이어리를 폈다. 빈말하지 말자, 라고 쓰고 나니 내가 흘린 말들 가운데 뼈아프게 벌거벗은 약속이 떠올랐다. 희망버스 기획자로 수배 중이던 송경동 시인을 몰래 찾아갔을 때였다.
근처 순댓집에서 사온 순대에 소주를 나눠 먹으며 그에게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나 특유의 수줍음으로 이렇게 답했다. 회요. 까짓것, 내가 민어회 떠서 다음 주에 올게요… 하였거늘 그는 지금 회도 먹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구치소는 따뜻한가. 방구석에 앉아 손톱 밑이 노래지도록 귤이나 까먹는 주제에 부끄럽게 묻는 새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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