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중기 물가안정목표(3% ±1%p)의 상단에, 또 정부의 올해 물가 전망치에 가까스로 턱걸이 한 수치다. 하지만 지난 달 이뤄진 통계 놀음(물가지수 개편)을 배제하고 2005년 기준 구(舊) 물가지수를 적용하면 올해 실제 물가상승률은 4.4%에 달한다. 올 들어 딱 한달(10월)을 제외하고는 목표치 상단(4%)을 모두 웃돌았다. 이유가 뭐든, 명백한 물가관리 실패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하지만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 물가당국은 끝내 반성이나 사과를 외면했다. 그보다는 변명만 앞섰다. 비록 물가가 목표치ㆍ전망치를 벗어나긴 했지만, 해외나 공급 측면의 요인이 컸기 때문이니 물가당국의 실패로만 보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2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올해 물가안정목표제 운영상황'을 점검하고, '내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을 의결했다. 한은은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 초반대를 기록해 올해 연평균 물가 상승률이 4.0%(구 지수로는 4.4%)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우선 올해 물가 상승률 4.0% 중 2.3%포인트가 공급 요인, 1.7%포인트가 수요 요인으로 분석됐다. 물가당국이 통제하기 힘든 공급 요인(57%) 못지않게 금리정책 등으로 통제 가능한 수요 요인(43%)도 물가상승에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한은이 내놓은 해석은 달랐다. 공급 요인이 물가 상승률에 기여한 부분이 작년에 비해 0.9%포인트 높아진 반면 수요 요인은 0.1%포인트만 늘어난 만큼, 올해 물가 상승률에서 공급 요인이 기여하는 비중이 9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즉, 통화정책으로는 해소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금리인상 효과에 대한 모의실험 결과도 비슷하다. 작년 7월 이후 0.25%포인트씩 5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 효과를 분석해 보니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작년에 0.5%포인트, 또 올해 추가적으로 0.5%포인트 낮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그렇지만 올해 2차례 금리를 더 올렸더라도 물가 하락 효과는 올해 0.1%포인트, 내년 0.2%포인트에 불과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금리 인상 실기(失期) 논란을 잠재우는 근거로 제시한 셈이다.
한은은 또 우리나라처럼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 나라들의 사례를 들며, 대부분 국가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이상우 조사국장은 "세계 전체가 공급 충격에 빠진 결과이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물가 상승이 금리정책의 실기로 평가돼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역시 실패를 인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한 해 동안의 물가 상황에 대해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고 표현했다. 연초 이상한파와 여름철 집중호우, 국제유가 급등과 환율 상승 등 공급 측면의 어려움이 많았다는 의미다. 그는 "이런 원가 상승 요인에 인플레 심리까지 가세하면서 정부가 최선을 다했지만 서민 부담을 크게 줄여드리지 못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록 "겸허한 자세로 서민 눈높이에서 (정부의) 부족함을 보완해 나가겠다"며 연말연시 생필품 물가 특별점검을 강조했지만, 어디에도 정부의 실책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명시적 표현은 없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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