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난 김모(23)씨는 8개월 만에 돌아왔다. 최소 1년 이상을 예정하고 갔지만 환율이 크게 뛰는 바람에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는 "1유로에 1,400원이던 환율이 1,600원까지 오르면서 준비한 돈이 금세 바닥이 났다"며 "부모님이 송금해줄 때마다 죄스러웠다"고 했다. 설상가상 유럽의 재정위기로 현지 물가도 뛰어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조차 쉽지 않았다. "점심은 굶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등 최대한 절약했지만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란 얘기에 중도 포기했다"고 허탈해했다.
지난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간 정모(26)씨도 당초 예정을 3개월 남기고 조기 귀국했다. 어머니 적금으로 3,000만원을 마련했지만 7개월이 지나자 400만원만 남았다. 환율 변동을 예상치 못한 탓이다. 급할 때마다 비상용으로 썼던 신용카드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그는 "환율이 올라 한달 생활비가 10만원 이상 줄어들고 카드 결제부담은 늘어나자 덜컥 겁이 났고 공부는 뒷전으로 밀렸다"며 "적응할만한 시기에 쫓기듯 돌아왔다"고 아쉬워했다. 부모가 마음 아파할까 봐 귀국 이유는 적당히 둘러댔다.
해외 유학생들의 슬픈 유턴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환율 변동에, 세계적 경제위기에 따른 현지 고물가와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부담 증가 등이 겹쳐진 탓이다. 갑자기 학업을 중단해 애써 낸 학비를 환급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례도 많다. 현지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성 매매의 늪으로 빠져드는 유학생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유학생들의 처지가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실제 유학 및 연수비용 지급은 2년여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5~8월엔 작년에 비해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9월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원ㆍ달러 환율이 치솟자 송금을 늦추고 있는 게 주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의 유학 및 연수 지급은 2억5,07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1% 급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된 2009년 7월(-24.3%)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9월에도 13.8%나 줄었다.
9월 중 원ㆍ달러 환율 평균치는 종가 기준 1,125.09원으로 전달(1,074.05원)보다 크게 올랐고, 3월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1,100원대를 넘었다. 10월에는 1,200원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유학비용은 특히 환율에 민감하다 보니 국내에서 돈 보내는 걸 미루고, 현지에선 유학생들이 근근이 버티고 있거나 조기 귀국을 택하게 된다는 얘기다.
자녀의 귀국을 저울질하는 학부모도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딸을 미국 뉴욕에 보낸 A씨는 "1,120원하던 환율이 갑자기 1,300원에 육박하는 등 환율 변동이 심해 송금할 때마다 고민이 많다. 6개월 만에 돌아오는 딸 친구들도 많더라"라며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최근 환율은 다소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경기는 좀체 회복 기미가 없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염모(55)씨는 "버는 돈은 줄고 갚을 빚은 늘어나다 보니, 3년 정도 계획하고 보낸 딸의 유학기간을 좀 줄일까 고려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권준상(동국대 북한학과 4)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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