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사과는 하지 않고 변명만 일삼는 소치는, 때로 방귀를 감추려고 설사를 보여 주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속담의 재발견-잡놈은 있어도 잡초는 없다." '소통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소설가 이외수씨가 날린 트윗이다. 읽을 때마다 감탄을 하게 만드는 이씨의 트윗에는 어느새 수많은 팔로어가 모여들게 됐다. 재치 있는 감성과 유머로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니 이런 이들의 말은 자연히 대단한 소통의 영향력을 갖게 된다.
2011년을 보내면서 소통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해방 이래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대표적 갈등은 남북, 세대, 지역, 계층 등 네 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었다. 단견인지 모르나 지금은 지역 갈등은 쇠퇴한 반면 보수 대 진보, 집권세력과 실권세력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념에 따른 진영 간의 갈등은 전쟁이라 불러야 마땅할 정도다. 게다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상호 배타적이고 이질적인 청년세대와 미성년세대의 갈등도 심각하다.
해소되지 않고 쌓여 가는 갈등
바꿔 말하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저마다 거칠게 자기 말만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10ㆍ26 재보선에서 확인된 민의에 호응하기 위해 여야 모두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그를 괴롭혀 온 소통이라는 문제가 임기 말에 가까워 가는데도 달라진 게 없으니 딱한 일이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나경원 후보가 패배한 원인으로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은 당의 낡은 시스템, 감성 부족을 꼽았었다. 한나라당의 자연수명이 다 됐다는 인식에 따라 개혁 요구가 커지면서 당 대표가 물러가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26세의 이준석 비대위원이 대표하는 젊은 감성을 받아들인 것도 소통을 강화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진정으로 소통을 하려면 다음 세 가지에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바로 감성이다. 젊은이들과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언어 감각과 정서를 갖춰야 한다. 어떤 이론이든 이념이든 정책이든 감성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집안에서, 주변에서부터 젊은 감성에 접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더 큰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요즘 부모는 자녀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그들의 생각과 생활을 알 수 없고 해소되지 않는 갈등이 쌓여 간다.
둘째는 한결같은 생각(소신이라고 해도 좋다)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한미 FTA에 대해서 극력 반대하거나 적극 옹호하던 사람이 그 반대로 말을 바꾸면 아무리 그럴싸한 말을 해도 소통에 역효과만 나고 만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치권이 지금 그렇다.
세 번째로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 말이 거칠고 공격적 배타적이거나 그 기본 발상이 촌스럽다면 소통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 흔히 '지금 여기'의 현장분위기에 취해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부인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민주당 최종원 의원의 경우 여러 차례 막말로 말썽을 일으켰는데, 그가 어떤 소통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판사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거친 언사로 표현의 자유를 농하고, 주의와 경고를 받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젊은 감성에 품위를 갖춘 말을
유의해야 할 것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공간이 내밀하고 폐쇄적인 소수의 소통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개활지이며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곳이므로 늘 말조심을 해야 한다. 게다가 소통이라는 게 꼭 SNS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거나 꼭 그것을 통해야만 되는 건 아니다. 일상의 실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면(對面) 소통이야말로 더욱 중요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오늘날의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은 말만 잘해도 된다. 적절하고 따뜻하고 재치 있는 말 한마디로 지지자를 많이 모을 수 있고, 그렇게 지지자들이 많아지면 무슨 일이든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지금은 그야말로 말로 먹고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런 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딱하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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