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신묘년(辛卯年)은 유독 종교계에서 잡음이 많았던 해다. '성(聖)이 속(俗)을 걱정해야 하는데 속이 성을 걱정하는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종교간 대화와 협력, 평화 공존에 진력하는 종교인도 적지 않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인 김희중(64ㆍ광주대교구장) 대주교가 바로 그런 이다.
28일 광주 쌍촌동 광주대교구청 집무실에서 김 대주교를 만나 종교의 공존 방안, 바람직한 신앙인의 자세, 북한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종교간 갈등을 해소하려면 이웃 종교의 신앙과 교리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1975년 사제 수품을 받은 뒤 광주가톨릭대 교수와 광주 금호동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2010년 광구대교구장에 착좌했다. 현재는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과 한국종교인평화위원회 대표회장으로 종교간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 한 해도 종교 내부 분란과 종교간 갈등이 적지 않았는데.
"일부 종교인들의 비정상적인 돌출 행동에 대해서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종교가 힘이 되고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맹자님은 '성자천지도야 사성자인지도야(誠者天之道也 思誠者人之道也)'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물에 널리 미치고 있는 성실함(誠)이 하늘의 원리이기에 우리 인간은 이 하늘의 성실함에 위배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뜻이겠죠."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간 갈등을 줄이는 방안은.
"우리나라는 50여개의 종교와 600여개의 종파가 뒤섞여 있어 '종교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얼마 전 이란 정부 초청으로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아에서의 종교와 문화의 대화'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에서 한 가지 꽃을 같은 색깔과 크기로 심어놓은 정원의 아름다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듯, 다양한 종교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종교의 신앙과 교리를 존중한다는 뜻에서 다른 종교를 '이웃종교'라고 표현한다고 소개했지요. 결국 상대 종교를 전적으로 인정하기 힘들어도 존중하는 자세만 가진다면 극단적인 대립은 피할 수 있겠죠."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자격으로 7대 종단 대표들과 남북종교인들의 화해 협력을 위해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바람직한 남북관계는 어떤 것인지요.
"19일 개신교 교단장 목사님들과 대한성공회 주교님, 한국정교회 대주교님 등과 한국기독교협의회 회의를 하던 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서 남북한의 교류협력과 화해의 노력이 뒷걸음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정부는 통일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의지를 감안해, 민족 동질성 회복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대북문제에 보다 대승(大乘)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지도자들에게 '정치적인 계산과 자존심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공존보다 더 중요합니까? 서로 한 발자국씩 양보하고 우선 양측의 공동 관심사와 이익을 위해 대화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전략이 아니라 서로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남북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과 한반도를 위한 최첨단 무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평화공존이라고 믿습니다."
-최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우려를 표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 문제는 이미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정부가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제주도민의 뜻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일부 안보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자연 유산인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만드는 일이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와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해군기지가 안보에 크게 기여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국제적 긴장을 일으키고 그 결과 제주도 관광객의 70~80%를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과 중국과의 무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합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절차로 국민의 뜻을 충분히 들어 이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종교인의 자세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시죠.
"종교인이라면 신앙과 일치하는 삶을 통해 얻게 되는 신앙의 힘, 깨달음을 이웃 사랑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현장에서 신앙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평화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저 자신도 이렇게 완전하게 살아가지 못합니다만, 매일매일 저의 부족함을 반성하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광주=글ㆍ사진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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