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99%'의 시위, '나는 꼼수다' 열풍, 서울시장 보궐선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표되는 소셜미디어는 올해 전 세계에서 대중을 움직인 강력한 동인이었다.
상황은 국내도 다르지 않았다. SNS 이용자가 급증하고 선거 등을 통해 그 위력이 확인되면서 정치권이나 기업 등은 SNS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제는 과연 SNS 공간의 빅데이터가 '집단 지성'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것이냐는 부분이다. 17년간 온라인 생태계를 연구해온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윤영민(56) 교수는 지난해 5월 페이스북에 '정보사회학' 페이지를 개설,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이 문제 등을 놓고 토론을 한 뒤 그 결과를 지난 11월 'Dialogue 소셜미디어와 집단지성'이라는 책에 담았다. 소셜미디어와 관련된 99개의 발제문과 글에 달린 댓글 난상토론을 모두 기록했다.
-정보사회학 페이지 구독자 수가 3,000명이 넘는다. 학문적 목적으로 운영되는 페이지로서는 굉장한 성공인데.
"정보사회학 페이지의 성공 이후 비슷한 페이지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한 달이 안돼 문을 닫았다. 온라인에서 집단지성을 구현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우리나라 소셜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식의 질문 한줄만 올려놓고 댓글을 기다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나는 토론주제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정한 뒤 사람들이 의견을 나눌 여지를 둔 채 내가 아는 것을 정리해 문제를 제기했다. 대화는 말을 거는 행위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상대의 생각을 물어야 한다. 댓글이 달리면 최대한 빨리 답글을 쓰는 것도 필수적이다."
- '온라인 공중 대화를 커피하우스 공론장으로 볼 수 있을까요' 라는 글에서는 나흘 동안 밤낮없이 댓글 토론이 이뤄지기도 했는데.
"나흘이 뭔가. 어떤 글은 한 달 넘게 토론이 이어지기도 한다. 페이지 구독자가 늘어나고 세계 각국에서 참여하면서 24시간 토론이 이어졌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공부를 해서 수준 높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많아 깜짝 놀랐다. 한 주제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나온다고 보면 된다. 그것이 댓글들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출판한 동기이기도 하다. 또한 '대화는 지식을 전파만 하고 생산하지는 못한다'며 대화를 우습게 여기고, 또 '인터넷은 선전ㆍ선동과 부화뇌동의 장'이라는 비판을 반박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하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세계는 어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나.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한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포틀래치를 구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북미 인디언들의 선물경제를 통해 돌아가는 사회관계를 말한다. 추장이 잔치를 벌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부족 구성원에게 주고, 구성원들은 추장에게 절대적 충성을 바친다. 개인이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을 넘어 선물이 사회 운영의 원리가 되는 것이 선물경제론인데, 선물을 주어야 할 의무, 받아야 할 의무, 보답해야 하는 의무 이 세가지 의무가 구성 원리다. 화폐가 매개가 아닌 선물을 통한 관계 설정이 핵심인 셈이다. 소셜미디어는 사용자들이 공동으로 '관계'라는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매스미디어, 퍼스널미디어와 다르다. 고전 이론 중 프랑스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의 선물경제론이 이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본다."
-선물경제론을 페이스북에 적용한다면.
"사용자가 담벼락에 김정일 사망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글을 올린다고 치자.(선물) 사람들이 읽고 댓글을 달고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보답) 글을 쓴 사람은 지식을 알리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글을 썼을 텐데, 이것은 돈과 아무 관계 없는 것이다. 글을 읽은 사람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댓글을 다는 것은 글에 공감해서뿐만 아니라 그렇게 글을 써 주는게 고마워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에 담벼락에 글이 수백 건 이상 올라오는데, 그 글에 일일이 댓글을 다는 것도 정성이다. 이렇게 시간을 쪼개서 정성을 표현해 주는 이유를 선물경제론보다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은 없다. 여기에 시간 제한도 있다. 선물경제론에서는 선물도 받고 나서 일정 시간 내에 보답을 해야만 한다. 페이스북에서도 댓글을 달고 난 후 답글이 한참 동안 이어지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여기고 관계가 소원해진다.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관계에 있어서 최소한의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고, 표현을 해 줘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이다. 페이스북은 '좋아요' 버튼으로 성공했다고 본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보사회학 페이지 30여명의 핵심 멤버 중 상당수가 올해는 정보사회학 수업을 듣는 학부생들의 온라인 멘토 역할을 해 줬다. 이번에는 학교 측과 협력해 이들과 정보사회학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 계획인데, 출판된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3분, 5분 분량의 방송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 것이다. 나와 함께 댓글 토론을 했던 이들도 물론 참여한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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