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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 청소노동자들의 특별한 송년회/ "꼬깃한 봉투에 든 장학금 100만원에 눈물이 차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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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 청소노동자들의 특별한 송년회/ "꼬깃한 봉투에 든 장학금 100만원에 눈물이 차오릅니다"

입력
2011.12.2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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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어려우실텐데, 받아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아주대 수학과 3학년 방병화(23)씨는 양손으로 봉투를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학교 청소노동자들을 대표해 봉투를 전달한 채종애(64ㆍ여)씨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봉투엔 5만원권과 1만원권 지폐 등이 뒤섞여 담겨 있었다. 아주대 청소노동자 60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어렵게 마련한 장학금 100만원이다. 은행 로고가 새겨진 봉투는 한 눈에 보기에도 꼬깃꼬깃했다. 조금 전까지 교내 곳곳의 건물에 흩어져 청소를 하던 노동자들이 급하게 모아서 만든 장학금이라 미처 깨끗한 봉투를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방씨는 "마음이 복잡하고 눈물이 차오르지만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29일 오후 4시 경기 수원에 있는 아주대 실내체육관의 한 강의실에서 열린 청소노동자들의 '아주 특별한' 송년회 풍경이다. 송년회 이름만 붙였을 뿐 단출하다 못해 초라할 정도였다. 음주가무는 고사하고 테이블 위엔 그 흔한 음료 한 잔도 놓이지 않았다. 음식이라고는 노조에서 마련한 귤 2박스가 전부다.

한 사람 당 귤 3개씩이 돌아갔을 뿐이지만, 나눠주는 이나 받는 이나 얼굴은 행복해보였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2011년은 이 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잊을 수 없는 한 해였기 때문이다. 5월 말 열악한 노동조건과 일상적인 고용불안으로부터 지켜줄 청소노동자 노조가 탄생했다. 월급은 시간 당 120원씩 월 2만원 가량 많아지는데 그쳤으나, 점심값이 하루에 2,500원씩 생겨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주 6일 근무도 5일로 줄었고, 연차 휴가도 15일 생겼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게 바로 방씨였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2008년 여름부터 노조 설립에 뛰어들었다.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하며 학내 의견을 모았고, 노동단체와 대학 정규직 노조 등의 도움 등으로 학교재단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3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다. 방씨는 "실패도 많았고 스스로도 '정말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한 일이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노조 설립이 끝이 아니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장학금은 방씨에 대한 청소노동자들의 감사의 표시다. 방씨가 등록금 마련이 어려울 만큼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몇몇이 모금 아이디어를 내자 너도나도 동참했다. 다들 없이 사는 형편이지만 폐지를 판 돈과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성금으로 기어코 100만원을 만들었다. 최인숙(62ㆍ여) 아주대시설관리 분회장은 "차비가 없어 학교까지 걸어 다닐 정도로 힘들다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며 "졸업할 때까지 능력이 되는 한 다만 얼마씩이라도 돕겠다"고 했다.

이날 송년회는 30여분 만에 끝났다.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 이들에게 방씨는 "고맙습니다"를 몇번이고 반복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박수를 보내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니야, 우리가 더 고마워!"

수원=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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