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의 간판 격으로, 고급 두뇌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장으로 꼽힌다. 그런데 올 들어 7명의 연구원이 KDI를 떠났다. 많아야 3~4명이 이직하던 예년과는 판이한 현상이다. 올 여름 사표를 내고 수도권의 한 대학으로 옮긴 A씨는 "2012년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최근 사표를 낸 B씨는 "KDI보다 근무여건이 떨어지더라도, 아이들 교육환경이 보장되고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직 배경을 설명했다.
내년까지 부산으로 이전해야 하는 영화진흥위원회는 사실상 이전계획 수립을 포기했다. 1,229억원으로 책정된 경기 남양주종합촬영소 매각이 4차례나 유찰돼 이전 비용 마련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10개월 가량 걸리는 신청사 설계작업을 위해 서울 홍릉 사옥 매각대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에 요청했지만, "종합촬영소 매각이 우선"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영진위 관계자는 "촬영소 매각이 안되고 있어 언제 부산 이전이 가능할지 우리도 모른다"고 했다.
수도권 소재 147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계획 승인이 마무리됐지만, 당초 계획대로 2012년 말까지 이전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다수 기관이 직원들의 반발과 기존 부지 및 청사 매각 표류 등을 이유로 버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는 29일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지방 이전계획 승인을 끝으로 147개 공공기관의 이전계획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10개 혁신도시에 총 16조8,000억원을 투입해 지방이전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옛 한국정보사회진흥원과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통합된 기관으로, 본사는 대구혁신도시에, 교육ㆍ연수기능은 제주혁신도시에 들어선다.
그러나 정부 계획대로 지방이전이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존 부지와 청사 매각을 추진 중인 117개 공공기관(89개 기관) 중 매각이 이뤄진 곳은 34개(19개 기관)에 불과하다. 부동산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한국전력 삼성동 본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분당 사옥 등 대다수 기관의 매각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결국 이전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다 보니 이전 대상 147개 공공기관 중 신청사 착공에 들어간 곳은 55개뿐이다. 이 때문에 한전과 5개 발전 자회사가 내부적으로 지방이전 목표 시점을 2014년 이후로 연기하는 등 대부분 기관이 이전 계획을 연기했다.
공공기관들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로 눈치보기를 하느라 지방이전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산으로 옮길 예정인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석유공사 등은 "지방으로 내려가면 인재 이탈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하는 등 직원들의 반발도 극심하다. 지방본사와 수도권 지사 인원을 조정해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오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지 매각 등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당초 계획인 2012년까지 전체 공공기관의 이전은 어려워졌지만, 한국자산관리공사, LH 등이 최근 부지 매입에 나서면서 이전계획에 탄력이 붙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내년에 혁신도시 진입도로·상수도 등 기반시설 공사에 2,000억원을 투자하고, 아파트 29만가구와 22개 학교 건설을 위해 3조6,000억원을 순차적으로 투자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해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촉진한다는 입장이다. 김철흥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기획총괄과장은 "직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이전 예정지역에 기업과 학교를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 등을 완벽히 갖출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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