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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전 반대 문인들 릴레이 국토순례 참가한 소설가 백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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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전 반대 문인들 릴레이 국토순례 참가한 소설가 백가흠

입력
2011.12.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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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작가라는 인종은 알다시피 게으른 종족이다. 대략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이다. 아직도 밤을 꼴딱 새며 술을 먹는 마지막 남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날이 밝아서야 잠자리에 들어 다시 어둑어둑 해질 무렵 어슬렁어슬렁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게으르지만 나름 작가라는 인종은 굉장히 바쁜 사람들이다. 써야 할 원고를 언제고 산더미처럼 지고 있으니, 하루라는 여유 없음은 물론이었다. 작가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항상 바쁘다.

4년 전 정권이 들어서고 작가들은 더 이상 게으른 일상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인 치유의 과정, 자신을 위해 쓰는 과정을 통과한 후부터는 남을 위해, 독자를 위해 작가 개인의 몸과 사고를 내놓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읽는 자들의 현실과 풍경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작가 개인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작가는 가장 게으르고 느린 방법으로 우리가 처한 현실과 풍경을 바라보고 직시한다는 것이다. 촛불시위,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4대강,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파업, 85호 크레인, 한미 FTA, 그리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전에 이르기까지 이 정권은 게으른 우리를 게으르도록 가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부끄럼 많고, 좀체 쑥스러워서 방안에서만 피리를 요란하게 부는 나라는 인간도, 게으름을 털어볼 다짐이라는 것을 했으니, 이는 실로 놀라운 발전과 변화라 하겠다. 귀찮은 것 가장 싫어하는 내가 스스로 귀찮아질 것을 찾아 나서니, 스스로 왜라는 자문의 답을 주건데, 너는 변했다, 이다. 나는 변했다. 귀찮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던 몸이 조금 귀찮아도, 힘들어도, 바빠서 시간이 없어도 움직인다는 것이다.

제주의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며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릴레이 국토순례 길에 올랐다. 임진각에서 시작하여 제주 강정마을에 이르는 527km, 하루에 두 구간으로 나누어 매일 30여km를 걷는 일정에, 게으름 많던 작가들이 선뜻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나섰다.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획일적 국책사업에 반대한다는 뜻이겠다. 무엇보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후대에게 넘겨주자는 것이다. 이제 개발, 나발 좀 그만 불자는 이야기이다.

나는 첫 날, 두 번째 주자였다. 문산역 근처에서 교하사거리까지 14km를 시인 함성호, 손택수, 신용목과 함께 걸었다. 날은 추웠고, 바람은 매서웠으며, 무엇보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몸이 자꾸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한적하고 휑한 길을 걸으며 보는 사람도 없고, 응원하는 사람도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무슨 별 볼 일 없는 짓이냐, 하는 사람도 있을까 모르겠지만, 우리 서로는 분명 알고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앞서가는 사람의 발을 보면서 그냥 묵묵히, 침묵하고 걷는 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임을.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펜촉이 날카롭게 갈렸다. 칼 같은 펜촉으로 글을 쓰며, 몸을 움직이며 우리는 부지런해질 것이다. 귀찮아하지 않을 것이다. 게으른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어젯밤에는 송경동 시인 구속 철회를 위한 낭독회가 있었다.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모인 자리였다. 행사가 끝나고 새벽, 아침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잠깐 자고 일어나 이 글을 쓴다. 내가 이 정도니, 정부는 겁 좀 먹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송경동 시인 좀 풀어주시라, 그가 잘못한 것은 희망으로 가는 버스를 기획한 것 밖에 없는데, 너무 하지 않는가. 안 풀어주면 부산까지 또 걸어야지, 뭐.

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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