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속에서 즐기는 따끈한 온천욕… 행복이 파노라마처럼…
설국(雪國)이 부른다. 일본 혼슈(本州) 북동부 아키타(秋田)는 눈의 나라다. 화산섬인 일본 열도 어디든 샘솟는다는 온천 여행도 제철을 맞았다. 물 좋기로 이름난 이 지역에는 풍부한 원천(源泉)을 따라 아담한 온천이 딸린 료칸(일본 전통 여관)이 흔하다.
뜨끈한 물에 주저앉아 파노라마로 펼쳐진 설경 감상
우선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한 심신을 내려놓을 작정으로 아키타현의 유명 온천단지 뉴토 온천향으로 향했다. 이 곳은 뉴토산 1,500m 기슭에 숨어 비탕(秘湯)으로 불린다. 한 번 사용한 온천수를 재활용 하지 않고 흘려버릴 정도로 원천이 풍부한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유황 온천 지구다.
철분이 함유된 황금빛 물이 유명한 다에노유, 맑은 온천수의 가니바ㆍ마고로쿠 등 각기 특색이 있는 여덟 개의 온천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온천 츠루노유를 택했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 김태희가 머물러 더 유명해진 츠루노유는 아키타 영주의 온천 치료장이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상처 입은 학(츠루)이 온천탕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이 전해지며 그 이름이 붙었는데, 일반 손님을 받은 역사는 3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츠루노유는 뉴토 온천향 입구에서도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눈 쌓인 오솔길을 따라서 20~30분 슬금슬금 달려야 닿는다. 엉덩이를 수도 없이 찧어야 하는 비포장길이다. 다른 온천들과 뚝 떨어져 진짜 비탕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이 곳은 소박하지만 범상치 않다. 마침내 입구에 도착, 주위를 빼곡히 채운 청량한 삼나무숲의 내음을 들이마셔 볼까 하기도 전에 옅은 유황 냄새부터 훅 끼친다.
온돌을 사용하지 않는 문화인지라 탈의실 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대강 몸을 헹구고 까치발을 한 채 급하게 온천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힌다. 눈 앞에는 딱 일본 온천에 기대했던 신비스러운 풍광이 펼쳐져 있다. 사면이 눈 덮인 자연이고, 우윳빛 물을 가둬 놓은 아담한 욕탕에서는 안개처럼 뿌연 수증기가 쉴새 없이 하늘로 올라간다.
갑자기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저릿하면서 금새 노곤해진다. 수증기 때문에 몽롱함이 더해지지만 코끝이 시릴 만큼 차가운 바깥 공기에 정신은 맑아진다. 삼나무가 몸을 털어 후드득 눈을 떨구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절로 마음이 잠잠해진다. 지척에 눈이 소복이 쌓인 하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싶다.
어스름 무렵 피로를 씻어내고 말간 얼굴로 유카타를 입고 총총 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얼굴이 평온해 보인다. 일본 온천 대부분이 그렇듯 츠루노유도 남녀혼탕을 운영한다. 물이 우윳빛이라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혼탕을 경험하고 싶은 초보자에 제격. 그러나 흘끔 혼탕을 들여다 보니 젊은 여인네는 보이지 않는다. 남편인 듯 보이는 이를 대동한 중년 부인과 할머니 몇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혼탕을 써야 하는데, 저녁 8시가 되면 혼탕과 여탕을 바꾼다. 숙박까지 하려면 6개월까지 예약이 밀릴 정도로 인기가 높아 전화나 인터넷 예약(www.tsurunoyu.com)이 필수다. 오후 3시 전까지는 하루 목욕 이용객을 받고 이후에는 숙박객들만 이용할 수 있다. 당일치기 온천 이용 요금은 500~600엔 정도.
'슬픈 소녀의 전설'과 '에도시대 무사의 거리'
아키타는 오후 4시면 어둑해져 5시면 완전히 캄캄해진다. 해가 지기 전에 온천에 다다르려면 서둘러 주변 관광지를 돌아야 한다. 뉴토 온천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꼭 들른다는 다자와코(田澤湖ㆍ다자와 호수)에는 슬픈 전설을 품고 있는 다츠코상이 있다. 금빛 몸을 하고 물 한 가운데 서 있는 이 소녀상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호수의 물을 마셨는데 그만 용이 되어 호수를 지킬 운명이 됐다고 한다. 산성수가 흐르는 다자와코는 일본 호수 중 최고 수심(423.4m)을 자랑하는데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인근 호수의 용이 되었다는 하치로라는 청년이 겨울만 되면 다츠코를 찾아오는데, 둘의 사랑의 온기 때문에 호수가 얼지 않는다는 얘기도 전해내려 온다. 호수 둘레는 20km나 되는데, 여름에는 야영객들의 캠핑장으로 쓰인다. 바로 근처에 분가루 같이 고운 눈을 자랑하는 다자와코 스키장(www.tazawako-ski.com)이 있다. 호수를 내려다보며 스키를 즐기는 맛이 그만이다.
아키타 남부에 위치한 가쿠노다테(角館)도 빼놓지 말아야 할 코스. 에도시대 무사들의 고풍스러운 저택을 엿볼 수 있는 이 곳은 '작은 교토'로 불릴 정도로 유서 깊은 목조건물들이 많아 중요 전통건축물 보존지구로 지정돼 있다. 북쪽은 무인저택, 남쪽은 상인저택 거리다. 가장 오래된 무사 저택 이시구로가나 아름다운 정원, 안채, 무기장, 향토관 등 둘러볼 거리가 많은 아오야기케 관람은 유료다. 가쿠노다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히노키나이 강 제방도 산책 코스로 좋다. 수령 200년이 넘은 수양벚나무가 즐비한 이 길은 봄이면 벚꽃 대궐로 변하는 명소다.
지역 명물 나마하게(도깨비)를 제대로 체험하려면 서쪽으로 튀어나온 오가반도(男鹿半島) 나마하게관에 들르면 된다. 백수건달이 나마하게가 되어 매년 섣달 그믐 민가에 출몰해 불효하는 이는 없는지, 게으른 이는 없는지 훈계하고 집주인에게 음식을 대접받는다는 풍속이 매일 재현되는데,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아키타의 쇼핑 인프라는 미흡한 편이다. 아키타역 인근에 세이부 백화점 등 몇몇 쇼핑몰이 있긴 하지만 규모나 구색이 신통치 않기 때문에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나가는 편이 낫다.
오로지 휴식을 위해 아키타를 찾았다면 신칸센을 타고 북쪽으로 가볼 것을 권한다. 역마다 그 곳의 특색을 담아 파는 벤또(도시락)를 까먹으며 차창으로 지나는 설국을 감상하자니 사색을 위해 더없이 훌륭한 여행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인기 덕분에 아키타 사람들은 일본에서도 특히 한국인들에 친근감이 높은 편이다. 어디서나 친절한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아키타=채지은기자 cje@hk.co.kr
■ 쌀 요리 기리탄포 맛보고 사케에 취해볼까
한자로 '가을 논'을 뜻하는 아키타(秋田)는 일본 최대 곡창지대다. 일교차가 큰 기후와 일급 청정수 덕분에 최고의 쌀 생산지로 유명하다. 사케의 주원료인 쌀과 물이 모두 최고라 당연히 술 맛도 좋다. 저온 장기 숙성 방식으로 만들어 달큰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하고 깊다. 사케에 관한 아키타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가도 여러 개. 사케를 마시는 방법은 잔에 먼저 4분의 1만 따라 향을 음미하고, 투명도와 색을 살핀 후 한 모금 머금고 공기를 들이마셔 입 안에 맴도는 맛을 보는 게 정석이다.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간장 된장 제조사 안도양조원에 들러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 JR 가쿠노다테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밥 꼬치구이 '기리탄포'는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요리. 햅쌀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 거칠게 으깬 반죽을 삼나무 꼬치에 길다랗게 꽂아 구운 것으로 생김새는 어묵과 비슷하다. 떡보다 찰기가 덜해 먹기 편한데, 겉에 달큰한 된장을 발라 굽거나 소스에 찍어 먹는다.
아키타 토종닭 히나이지도리로 우려낸 육수에 닭고기와 내장, 알, 우엉, 버섯, 곤약, 미나리, 파 등 각종 야채와 기리탄포를 넣어 끓인 기리탄포 나베는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 쌀이 풍요로운 고장이라 인심도 넉넉한 것인지 기리탄포 나베는 보통 1인용을 파는 일본식과 달리 기본이 3,4인분 분량이다.
우동 면발은 통통하다는 선입견을 깬 이나니와 우동도 별미다. 건조우동인 이나니와는 에도시대 초기부터 이 지역에 전해온다. 면발이 가늘어서 후루룩 먹을 수 있는데, 혀끝에 닿는 감촉이 매끄럽고 쫄깃쫄깃하다.
자세한 정보는 아키타현 종합사이트(www.akitafan.com)나 일본관광청 공식 홍보사이트(www.jroute.or.kr)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문의 아키타현 서울사무소 (02)771-6191.
채지은기자 cje@hk.co.kr
■ 여행수첩/ 일본 아키타
●대한항공이 서울-아키타 직항편을 월,목,토 주3회 운항한다. 2시간 30분 소요. 노선이 많은 도쿄에서 환승해 아키타까지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신칸센을 타는 방법도 있다.
●아키타 공항에서 가쿠노다테(2,200엔ㆍ50분 소요), 뉴토온천향(요금 3,400엔ㆍ2시간 10분 소요), 다자와코 호수(2,600엔ㆍ1시간 30분 소요) 등 주요 관광지에 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닿을 수 있는 에어포트라이너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천 마니아라면 뉴토온천향의 지정 숙소 8곳에서 파는 '유메구리 수첩'(1,500엔)이 요긴하다. 8개 온천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자유 이용권이다. 이게 있으면 예약제 승합 택시 유메구리호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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