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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왕따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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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왕따의 뿌리

입력
2011.12.2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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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사이의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을 뜻하는 '왕따'가 국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6월21일자 한국일보 사회면을 통해서다. 그 이전에 언론들은 이런 행태를 8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됐던 이지메(いじめ)로 표현해왔다.

'왕따'라는 말은 언론의 작명(作名)이 아니라 당시 투신 자살한 한 여중생의 친구들 입에서 나온 표현이다. 특정 현상이 언어화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익숙한 문화'라는 뜻이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기자의 중학교 시절을 돌이켜볼 때 약하거나 튀는 특정 학생을 타깃 삼아 반 학생들이 집단으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악습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문제가 된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왕따'라는 말이 나왔던 15년 전 사건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깜짝 놀랄 지경이다. 당시 같은 반 친구 5, 6명으로부터 집단폭행 등 수시로 괴롭힘을 당하던 서울 송파구 모 여중 3학년 J(15)양은 "수업이 끝난 뒤 보자"는 이들의 말에 놀라 수업 중 학교를 빠져 나와 자신이 살던 아파트단지 옥상에서 투신했다. J양은 투신 직전 친구에게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느니 내가 죽는 게 낫다"고 속마음을 털어놓고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학교도, 부모도 J양이 처한 상황을 몰랐고 반 친구들은 담임교사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을 따름이다. 왕따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J양 친구들은 경찰에서 "때린 아이들이 선생님께 불려가 혼나는 것은 순간이지만 걔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영원하다"는 식으로 진술했다.

사건 직후 정부는 폭력학생 실태조사와 함께 각 중고교에 전담 경찰관을 두는 대책을 내놓았다.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학생들의 폭력성을 고취시킨다며 무단복제 일본만화 판매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그때 제대로 된 대책이 세워졌더라면 부모와 형에게 먼저 저 세상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스러움을 절절이 표현한 대구 중학생의 유서를 읽어내려가다 이처럼 가슴이 먹먹해지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 사건 이후 15년 동안 무수한 왕따ㆍ학교폭력 사건이 있었고 그때마다 교육 당국과 경찰의 갖가지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나아진 게 없음을 방증하는 게 대구 사건이다.

최근 들어서는 갱 영화처럼 피해 학생을 모래에 파묻는 식으로 폭력성의 강도는 더욱 심해졌고 빵셔틀 가방셔틀 숙제셔틀처럼 피해 학생을 종처럼 부려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태로까지 발전했다. 숨진 대구 중학생은 가해 학생의 게임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셔틀까지 강요당했으니 괴롭힘의 형태는 계속 분화하고 또 악화하고 있다.

그동안 표면화한 왕따 사건, 집단 괴롭힘 사건은 대부분 중학교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고, 그 싹은 초등학생 때 발아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포털사이트 지식 Q&A에 왕따 고민을 올리는 이들의 상당수가 초등학생이지만 피해 양상이 중학생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사춘기와 맞물린 중학생 시기에 가해ㆍ피해 양상이 극단화하는지 일본에서도 1994년 한 달도 안 된 사이 이지메에 시달리던 중학생 5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어 큰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더 이상 면피용 대책만 남발하는 정부나 무성의한 학교만 탓하고 맡겨둘 일이 아닌 것 같다. 사회 전체가 그 원인과 맞춤 대책을 고민하고 비극을 미연에 막을 시기가 됐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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