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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평선 찾기

입력
2011.12.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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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horizon’이다. 우리 말 지평선은 땅 끝의 선이라는 의미지만 원래는 skyline, 하늘 끝의 선이다. 어원을 따지면 ‘지구와 그 밖을 구분하는 선’ 정도 되겠다. 한반도의 경우 그것은 대부분 나무나 산이겠지만, 단어가 생겨났던 이집트 그리스 로마쯤 되면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바다의 끝’이 되었을 터이다. 바다의 경우 4㎞ 정도 아무것도 없으면 수평선이 되고, 땅의 경우 8㎞ 안에 1㎙ 이상의 언덕이 없으면 지평선이 된다. 지평선 수평선 모두 ‘horizon’으로 ‘divide(나누다)’와‘circle(지구)’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굳이 땅 끝, 바다 끝이 아니라 ‘하늘선’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중국 만주 하얼빈에서 목단강까지 여행했을 때였다. 한마디로 ‘넓은 하늘’이었다. 동서남북 사방의 땅끝이 모두 시선 아래 있었으니 주위 360도 삥 둘러 둥그런 지평선이었다. 오른쪽 끝 먼 하늘엔 먹구름 아래로 뚜렷한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는데 바로 머리 위에선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왼쪽 지평선 위에선 이미 다른 구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땅이 오히려 왜소하게 느껴지고 드넓은 하늘만 눈에 들어왔으니 하늘선으로 기억했을 수밖에.

▦러시아엔 ‘큰 하늘’이 있었다. 동서를 구분하는 우랄산맥은 평균 높이가 500㎙에 불과한 구릉으로 우리의 태백산맥을 동서로 펑퍼짐하게 늘려놓은 형태다. 하지만 하늘은 너무나 컸다. 다소 울퉁불퉁한 하늘선이었지만 눈높이의 사방을 빠짐없이 둘러싼 지평선 위에 그보다 훨씬 큰 하늘이 묵직하게 얹혀 있었다. 산맥 동쪽 시베리아 대지를 상상했고, 미국 로키산맥 동부의 대평원이 기억났다. 대평원 도로에선 해질 무렵엔 서쪽으로, 해뜰 무렵엔 동쪽으로 향하는 길이 땅바닥에 걸린 태양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단되곤 했다(일출ㆍ일몰 도로).

▦한 해를 보내며 하늘을 쳐다본다. 넓지도 크지도 않은 우리의 하늘이다. skyline은 있지만 그것을 하늘선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고, 지평선을 얘기하기도 마찬가지다. 이상향을 그린 소설 이 생각난다. 사람의 눈높이를 1.7㎙로 상정할 때 지평선과 수평선을 바라보려면 4,665㎙의 탁 트인 시야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은 아닐 게다. 손바닥만한 하늘 아래 우리에겐 만주의 ‘넓은 하늘’이나 우랄산맥의 ‘큰 하늘’, 대평원의 ‘일출ㆍ일몰 도로’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 속에 지평선을 간직할 수는 있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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