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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톤 트럭 씁쓸한 인기몰이…실직·은퇴자들의 한숨과 꿈을 싣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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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톤 트럭 씁쓸한 인기몰이…실직·은퇴자들의 한숨과 꿈을 싣고 달린다

입력
2011.12.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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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톤 소형트럭은 '서민 트럭'이라 불린다. 1,000만원 대 안팎의 이 차량은 거리에서 과일 채소 등을 팔거나 하거나, 택배 식자재 등 배달 일을 하는 서민 자영업자들의 손발 역할을 한다. 실제로 1톤 트럭의 주인은 대부분 생계형 자영업자들이다.

그런 1톤 트럭의 인기가 요즘 뜨겁다. 중고차, 신차 가릴 것 없이 1톤 트럭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27일 중고차 판매 전문회사 SK엔카에 따르면 대표 소형트럭인 현대자동차의 '포터2'는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중고차 시장에서 총 1만5,571대가 팔려 그랜저TG, 아반떼HD, SM5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수많은 승용차를 제치고 소형 트럭이 판매랭킹 톱5에 끼인 건 전례 없는 일. 2009년에는 17위였고 작년엔 11위로 올랐는데, 올해는 순위가 더 크게 뛰었다.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승합차의 대명사인 기아자동차 '봉고Ⅲ'는 9,087대가 팔렸다. SK엔카 관계자는 "두 차량의 올해 중고차 시장 판매량을 합치면 2만6,000대가 넘는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경기침체가 심했던 2009년보다도 2,000대 가량 많은 규모"라고 전했다.

1톤 트럭의 인기는 신차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포터2와 봉고Ⅲ는 올 들어 11월까지 각각 9만1,082대와 4만7,833대 등 총 13만8,915대가 팔렸다. 이는 지난해 1년 동안 판매량에 육박하는 수치로, 특히 포터2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10만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1톤 트럭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지금의 경기상황, 특히 서민경제 온도와 직결되어 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경기가 좋을 때 승합차든 1톤 트럭이든 잘 팔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난 뒤론 오히려 반대 패턴을 보이고 있다"면서 "작년과 올해 소형트럭 판매가 늘어난 건 오히려 경기부진과 고용불안의 결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중고차 시장에서 1톤 트럭을 찾는 가장 큰 고객은 실직자, 특히 은퇴한 베이비부머(한국전쟁 이후 1955~63년에 태어난 연령층) 세대들이 가장 많다는 후문. 한 중고차 시장 관계자는 "어차피 1톤 트럭은 트럭행상이나 배달일, 혹은 관련된 업소를 운영하려는 자영업자들이 주된 고객이지만 요즘은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전보다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소 여유가 있는 예비자영업자들은 신차시장으로 향하지만, 정말로 영세한 계층은 차량도 중고시장 쪽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는 지난해부터 이미 본격화된 상태. 하지만 마땅히 재취업할 곳이 없어 이들은 식당 분식점 프랜차이즈 등 자영업 쪽으로 몰리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올 들어 자영업자는 지난 8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으며 특히 11월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만5,000명이나 늘어, 그 증가 폭이 2005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은퇴한 베이비부머나 경기침체국면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음식업이나 운수업 등 전통적인 영세자영업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1톤 트럭의 최근 강세는 '경기침체+고용불안+베이비부머 은퇴'가 맞물린 결과라는 지적이다. 특히 중고차 매매가 많다는 건 사려는 쪽 뿐만 아니라 팔려는 쪽도 많다는 뜻인데, 이 역시 위태로운 자영업의 현실을 반영하는 단면이란 지적이다.

택배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신 소유 차량을 가지고 택배 일을 하던 기사 중 상당 수가 최근 경기부진으로 물동량이 줄어 아예 일을 그만두고 있다"며 "트럭 자체를 처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실직ㆍ은퇴자들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자영업을 택하지만 워낙 생존률이 낮은 업종이라, 결국 자영업을 하던 이들이 소유하던 소형트럭을 내놓고 다시 새롭게 자영업을 하려는 이들이 이를 되사는 상황이 악순환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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