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충북 보은 산골로 귀농한 탈북자 김장수씨 "남한생활, 농촌에서 새 희망을 찾았어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충북 보은 산골로 귀농한 탈북자 김장수씨 "남한생활, 농촌에서 새 희망을 찾았어요"

입력
2011.12.27 17:35
0 0

"여기 보이는 산들이 노다지래요. 이 근방에 있는 산에서만 곰치가 1년에 3톤 나온답디다. 곰치뿐이 아니디요. 내가 직접 봤는데 느타리버섯, 송이버섯, 장뇌삼, 칡. 몸에 좋다는 것들은 죄다 있더래요. 서울에선 돈 주고 사먹고 싶어도 못 먹는 것들 아입네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충북 보은군 용곡리 산골마을. 이곳에 온지 3주째라는 탈북자 김장수(51)씨는 27일 첩첩이 둘러싼 산을 가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김씨가 용곡리에 터를 잡은 것은 지난 5일. 지인이 "별장과 일대 땅을 관리해주면 살 집과 농사지을 땅을 제공하겠다"는 한 독지가를 소개 시켜준 직후다. 더구나 당시는 서울 서초경찰서가 북한 이탈주민의 농촌 정착을 돕기 위해 마련한 통일영농학교 프로그램 3개월 교육 과정을 마치고 수료식만 남겨 놓은 때였다. "지금까지 배운 것을 활용해 농촌에서 살고 싶지만 집과 땅이 없어 문제"라며 고심하던 찰나에 찾아온 꿈같은 기회였다.

함남 신포 출신인 그는 2008년 6월 탈북, 혈혈단신으로 남한 땅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정착 이후 도시 생활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북에서 주로 배운 일이 농사였는데 먹고 살려다 보니 막노동일, 김치공장, 용접 일 등 닥치는 대로 했다"는 그는 지난 3년의 도시 생활을 "꿈은 있지만 꿈을 이룰 방법이 없어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다시는 그 생활로 돌아가기 싫다. 새로운 희망이 필요하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농촌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결심이 서자 진행은 빨랐다. 그는 그 날로 짐을 챙겨 용곡리로 향했다. 아내와 아들 둘을 서울에 남겨두고 홀로 내려와 인적 드문 산간 마을, 그나마도 이웃집과 한참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잡은 30㎡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에 살림살이 짐을 풀었다.

그는 "일단 농한기인 내년 2월까지 통일영농학교와 보은군 농업기술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산림 활용 농사 기법을 공부할 생각"이라며 "날씨가 따뜻해지면 임시 축사에서 키우고 있는 흑염소 25마리를 산에 방목해 명품 흑염소로 키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희망이 가득한 김씨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다. 그는 "직장과 학교 때문에 서울에 남은 아내와 두 아이, 시골에 살고 싶어도 돈이 없어 정착 시도조차 못하는 다른 동료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산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보금자리를 바라보는 김씨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는 "3년 안에 내 손으로 내 집을 지어 가족을 데려올 것"이라며 "내가 이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살아야 다른 탈북자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보은=손효숙기자 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