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를 불러서 제 삶을 이 세상에 흔적으로 남기고 싶고, 살아 있다는 뜨거운 느낌을 가지고 싶어요."
이메일이었지만 그의 소박한 답변은 간절한 뜨거움을 전하고 있었다. 송명화(36)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조총련계 민요 가수다. 1994년 재일조선학생 중앙예술경연대회 독창 부문에서 금상을 받고 이듬해 금강산가극단에 입단했다. 북한의 평양음악무용대학(현 김원균 명창 음악대학)에서 김관보, 계춘이 등 서도민요 명창들을 사사했고, 2000년 이후 금강산가극단의 일원으로 서울 공연도 했다.
그가 부른 12곡의 북한 신민요 독창곡집 '노들강변' (LOEN)은 한결같이 청아하고도 구성지다. 타이틀곡인 '노들강변'은 1933년 당시 대표적 레코드사인 오케 레코드사의 창립 기념으로 취입된 신민요 1호다.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인 이 민요조의 노래를 후일 북한에서 인민예술가로 승격된 대중음악 작곡가 리면상은 첫 신민요라며 크게 선전했다.
이 음반은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맨 앞에 둔다. 이어 망국의 설움이 중첩된 '노들강변', 평양 능라도의 풍광을 노래한 '대동강 실버들', 1957년 북한땅을 풍미한 '룡강기나리' 등이 스튜디오 녹음으로 수록돼 있다. 특히 2007년 오사카 공연 실황을 담은 '아리랑'과 '바다의 노래'는 북한 신민요의 흥을 날것으로 전한다.
그 창법이란 따지자면 벨칸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구성짐을 서양 창법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한다. 통일부로부터 '간접 접촉' 허가를 받고 진행된 이 인터뷰에서 송씨는 자신의 창법을 조총련계 재일 동포의 역사와 동일시했다. "북측의 창법을 바탕으로, 남측의 창법도 배우고 좋은 점을 받아 들이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감각을 섞어서 자기의 감성으로 노래합니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힘을 안겨주고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인민들'의 노래라는 점에서 그가 추구하는 민요는 옛 신민요와 같은 길로 통한다. '인민들의 생활'이 담겨 있으므로 1930년대에 생겨난 신민요와 자신의 노래는 결국 같다는 것이다.
"재일 동포들은 민요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조국을 그리고 민족을 느끼고 가슴 깊숙이 맺힌 한을 풀어요."
그는 금강산가극단에 들어간 뒤로 설장고와 상모도 배우고 있다. "춤추면서 노래하고 싶어서 배웠어요. 아이 낳은 후에 몇 년 못했으나 최근에 다시 조금씩 연습해요. 그리고 가야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북한에서의 민요 수용 양태를 한몸으로 구현하는 셈이다. 금강산가극단의 가수로서 동포들의 요구에 따라 가요나 민요도 부른다 했다.
이 음반은 '금강산가극단 민족관현악단'과 '민족전자밴드 향'이 반주했다. 금강산가극단 민족관현악단은 14인조로 단소, 장새납, 대피리, 저피리, 양금, 가야금, 소해금, 첼로, 콘트라베이스, 신디사이저, 장고, 타악기가 5음계의 새 멋을 펼친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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