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무원칙, 무책임이 어디에 있나. 3년 동안 내버려두었다가 부랴부랴 여야가 합의한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법안은 한마디로 방송의 공정성과 미디어산업의 다양성을 보호한다는 본래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더구나 비판 여론이 들끓고 일부 의원들이 반발하자 야당이 포기해 법안의 연내 처리는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여야가 합의했던 미디어렙 법안은 종편의 미디어렙 의무위탁을 2년간 유예하고, 1공영 다민영체제로 가되 민영 미디어렙의 경우 방송사 소유지분을 40%까지 허용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도가 넘는 특정 채널 봐주기이다. 이대로라면 지금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광고시장을 휘젓고 있는 종편의 횡포를 당분간 보장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영 미디어렙 설립으로 그나마 SBS까지 직접 영업에 뛰어드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소유지분 40%는 직접 영업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 종편과 SBS에 무제한 광고영업을 허용한 것과 다름없다.
종편을 비호해온 한나라당은 그렇다 치고 종편의 출범 자체부터 문제를 삼아온 민주통합당이 이런 법안에 긍정적 태도를 보인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가 미디어산업의 현실에 맞지도 않게 지나친 규모로, 그것도 다분히 정략적으로 허용한 종편을 인정하고 스스로 돕겠다고 나선 꼴이다. 신생 매체에 대한 배려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종편 소유주인 신문들의 눈치보기에 따른 야합이나 다름없다. 그래 놓고는 겨우 방송과 신문광고의 '크로스미디어 판매'를 금지한 것만 자랑하고 있다.
갑자기 법안 처리를 서두르는 이유에 대해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올해를 넘길 경우 방송광고시장의 대혼란과 종교방송 등 중소매체의 타격 등으로 방송의 공공성이 위협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지금까지는 몰라서 팔짱만 끼고 있었던가. 사실 방송광고시장을 무법천지와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든 것은 정치권이다. 미디어렙 법안만큼은 정략이나 야합이 아니라 광고시장의 공정과 미디어 생태계를 보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늑장 입법도 문제지만, 졸속 악법은 더 큰 해악만 가져올 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