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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희망, 있습니까?

입력
2011.12.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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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들만 더 많아지고 있다. 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여전히"멀미 나는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선과 악이 강퍅하게 충돌하고, 가치관이 뒤섞이고, 가짜가 당당하다. 생각과 의견을 진실이라고 우기고, 귀는 막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선택뿐이다. 내 주장과 이념에 동의하면 동지이고 이웃이고, 반대하면 적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법도 내 편이 아니면, 내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면 가차없이 무시한다. 남이야 굶주리고 헐벗든 말든 내 것만 열심히 챙기고 안전하고 풍족하게 살면 그만이다. 무한한 자유경쟁, 약육강식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존법칙이라며 타인의 희생에 냉랭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상식을 잃었고, 권위를 잃었고, 원칙을 잃었으며 소통과 관용, 나눔과 공동체 의식을 잃었다. 인격을 무시한 채 상대를 공격하는 천박한 무기가 된 언어는 품위를 잃었고, 가장 사실에 충실해야 할 언론마저 제 욕심 챙기기와 제 몸집 불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스스로 존재가치를 상실했다. 사실과 의견의 혼동, 자기합리화의 시대에 아무리 "이것이 진실"이라고 외쳐봐야 소용없다. 소통의 수단이 더 많아지고, 빨라지고, 자유로워졌지만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관용과 공감은 없다.

단절과 상실의 시대

어디를 둘러봐도 일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갈 곳 없어 길거리를 떠돌거나, 오토바이로 짐을 배달하거나 술 취한 사람 대신 운전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직장을 잃은 베이붐세대는 조그만 분식집을 열고는 텅 빈 가게에 앉아 한숨을 쉬고, 국민 4명 중 1명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지 못하는 빚 걱정에 겨울 추위가 더하다. 여차하면 가장 먼저 잘릴 비정규직들은 내년에는 경제가 더욱 나빠질 것이란 소식에 불안하기만 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도 희망을 주지 못하고, 세계경제도 우리 편이 아니다. 설령 경기가 나아지고 수출이 늘어난들 무슨 소용이 있나. 그것이 내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결국 1%만 더 배 불리는 부의 양극화를 부채질하면서 99%의 절망만 키울 것이 뻔하지 않은가. 정부가 내년에 예산을 늘려 7만1,000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했지만, 그 역시 확 와 닿지가 않는다. 지난 3년 동안 그렇게 일만 열면 최우선으로 꼽았지만 결국 청년실업률은 그대로이지 않은가. 문화와 미디어산업까지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팽개치며 떠벌렸던 일자리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가.

정부는 믿음을 잃었다. 말로는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해놓고는 귀를 막았다. 공정함과 정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외면했다. 그렇게 "권력비리 없다"고 장담했지만 곳곳에서 부정사건이 터졌다. 믿지 못하면 어떤 진심도 소용이 없다.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선언했지만 반응이 시큰둥하다.'복지'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악을 써대고, 상식조차 무시하면서 권위와 제도에 대들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공정'의 가치를 지나치게 부여하고, 나꼼수와 개그콘서트의 풍자에 열광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다행이라면, 늦긴 했지만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조금은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환골탈태를 위해 한나라당은 비대위까지 출범시켰고,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섰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따뜻한 이웃사랑의 손길로 자선냄비가 가득 찼고, 사랑의 온도계도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빈말이 아닌, 기업의 이익에 앞서 정말로 청년실업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회장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건 없이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기꺼이 세금을 더 내겠다는 국민이 절반이나 된다.

이만하면 견뎌볼 만하지 않은가. 물론 2012년 우리네 삶도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꿈과 희망까지 버리지는 말자. 꿈이 없으면 지금의 고통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갈 이유도 없다. 한 번만 더 믿어보자. 그리고 나서 결정하자.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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