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많은 식자들은 금번 사태가 한반도 안정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하리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벌써부터 북한 붕괴론과 급변사태론, 한반도 통일비용 등의 화두가 꼬리를 물고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국가안보와 대북전략에 몸담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태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일의 사망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라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대응능력과 노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가 대전략의 밑그림 위에서 국가의 역량을 결집하고 목표지향적인 정책들을 일관성 있게 추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북한의 권력승계가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김정일의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 요인보다는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보아야 한다. 경험이 부족하고, 권좌가 안정되지 못한 김정은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군부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혼란한 시기에는 강경론자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노회한 김정일은 이른바 '선군정치'를 내세워 군부를 다독거리는 한편 철저한 통제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그런 역량에서 김정은은 김정일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내년은 5년 전 북한정권이 내세웠던 '강성대국 건설'의 목표 연도이다. 대남 군사력에 관한 한 우월감을 갖고 있는 북한군부가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의 변화여부에 따라서 모험적이고 과시적인 대남 군사도발의 유혹에 빠질 개연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서 보여준 우리의 무기력한 모습들은 그들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요인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터졌을 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던 모습들을 상기해보라. 많은 사람들은 과연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크게 불안해하고 실망했다. 반년 후에 발생한 '연평도 피격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영토가 장시간 적의 집중포화로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왜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한미연합작전체제가 발동되지 않았는지, 왜 정규전 방어태세인 '데프콘(DEFCON)'이 발령되지 않고 대간첩작전테세인 '진돗개' 상황만 발령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상황이 끝난 다음에 확전을 방지하라는 지침이 있었느니 없었느니 따지던 모습도 또 하나의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이었다. 포탄이 작렬하는 긴박한 전투상황 속에서는 나팔소리가 명확해야 군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정부가 '선진화'라는 명목 하에 국방개혁이라는 정치적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모습도 생각 있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특히 상황이 엄중한 이 시기에 전투부대를 대폭 줄이고, 전선방어의 중심인 야전군사령부를 해체하고, 군사작전의 중추신경인 군 지휘구조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발상이 타당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이를 둘러싸고 현역과 예비역, 군과 군 간에 이견과 반목이 야기되고 있는 현상은 국가 위기대응태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상황이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게 된 지금은 정부와 군,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안보태세를 공고히 하고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관리에 혼신의 지혜와 노력을 모아야 할 때다. 공연히 기존의 군 체제마저 흔들어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할 때가 아니다.
조영길 전 국방부장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