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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봉사' 시사만화가 이동수/ "생존을 위한 투쟁들…작은 희망으로 동행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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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봉사' 시사만화가 이동수/ "생존을 위한 투쟁들…작은 희망으로 동행하고파"

입력
2011.12.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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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반듯한 칸 속에서 세상을 풍자하던 시사만화가가 네모 칸을 뚫고 나왔다. 촌철살인의 문구와 비리로 얼룩진 권력자의 얼굴을 그리던 그의 펜은 이젠 순박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그린다. 얼굴 뒤 후광을 더한, 실물보다 예쁜 캐리커처의 주인공은 일터에서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졸지에 집을 잃고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거칠고 격렬한 현실에 사는 그들은 시사만화가 이동수(51)씨의 펜과 종이 위에서 순정만화 속 주인공처럼 환히 웃는다.

1980년대 민중미술가들이 목판화와 걸개그림으로 투쟁 의지를 고취시켰다면 2011년의 시사만화가는 캐리커처 봉사를 하며 잠시나마 그들의 지치고 언 마음을 녹인다. 그의 손을 탄 캐리커처는 2년간 1,000명을 훌쩍 넘었다. 처음엔 심각한 투쟁현장에 웬 캐리커처냐며 의아해하던 사람들도 이젠 그 앞에 얼굴을 내민다.

종종 찾아가는 만화 활동을 하던 이씨가 본격적으로 현장을 찾아나선 건 2009년. 용산 참사 현장, 콜트콜텍 부당해고 노동자들을 돕는 수요문화제,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현장과 재능교육 해직자 농성장,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로 시작된 희망버스와 쌍용차 해고자 복직 투쟁 현장에도 그는 펜과 드로잉 노트를 가지고 나타났다.

"오래 전 지역 일간지 시사만화를 그릴 때 노동운동가 단병호 선생을 그릴 일이 있었어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안 보고도 그리는데, 좋아하던 단 선생은 잘 안 그려졌어요. 그때 어렴풋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려야겠다 생각만 하다 2년 전에야 실행에 옮겼죠."

때론 1인 시위를 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와 지지자들을 그리기도 했고, 그들을 응원하러 온 뮤지션을 스케치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목격한 그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순박했고 그들이 처한 현실은 잔혹했다.

"딴지일보 김어준씨가 어디에선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독재정권이 누를 때는 불의와 맞선다는 생각에 자존심이라도 지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생계를 담보로 압박해오니까 사람을 더 참기 어렵게 만드는 거죠. 이런 문제를 정부가 막지 않고 오히려 조장하는 분위기는 정말 참기 어렵습니다."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내쫓긴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엔 사측에서 투입한 용역들이 수시로 찾아와 욕설을 퍼붓는다. 노사간 다툼을 넘어 인권마저 짓밟히는 현장에서 이씨는 "작은 희망이라도 건지고 싶었다"고 했다.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 사태로 고공 크레인에서 외롭게 시위하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된 것처럼.

그는 자신의 그림을 '레알 로망 캐리커처'라 부른다. "레알(현실) 없는 로망(꿈)은 허망하고 로망 없는 레알은 너무나 건조하고 팍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은 이 두 개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과 함께 즐겁게 견뎌내고 싶습니다."

최근 전국시사만화협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이씨는 "그동안 마음이 있어도 현장에 나가지 못했던 후배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좋아한다는 도종환의 시 '담쟁이' 한 소절을 가만히 읊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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