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 깅리치 전 미 하원의장이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의혹이 이혼소송 서류를 통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깅리치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여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1주일 앞둔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판도에 파란이 일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깅리치는 아이오와에서 3위, 미 전역에선 1위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CNN방송은 26일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한 깅리치가 1980년 첫 부인과 벌인 이혼소송 기록을 발굴해 보도했다. 기록에 따르면 깅리치는 80년 7월14일 “결혼이 회복할 수 없는 파경에 이르렀다”며 소송을 냈다. 이에 부인 재키 배틀리는 “이혼할 이유들이 충분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내고 “깅리치의 소송을 기각시켜 달라”고 판사에게 요청했다. 당시 배틀리는 암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었다. 그 동안 깅리치측은 암 수술을 받은 다음날 병상의 배틀리에게 이혼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는 의혹에 대해, 배틀리가 먼저 이혼을 원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혼전문 변호사인 짐 페터슨은 “이혼 서류상 배틀리가 이혼을 원치 않은 게 명백하다”고 CNN에 말했다.
당시 의원 보좌관이던 깅리치가 별거 중이던 배틀리와 13세, 17세 두 딸에게 생활비를 제때 주지 않은 사실도 공개됐다. 배틀리는 “2~3개월 동안 전기ㆍ가스ㆍ수도 요금 등을 내지 않아 서비스 중지 경고장까지 받고 있다”고 법원에 호소했다. 별거 초기 배틀리는 수도 난방 전기 음식도 없는 집에서 기거했으며, 이웃의 도움으로 생활을 버텼다.
깅리치와 절친했던 레오나드 카터 전 웨스트조지아대 교수는 이혼 당시 깅리치가 “너도 알다시피 배틀리는 젊지 않고, 대통령 부인이 되기에도 모자란다”고 말했다고 CNN에 말했다. 깅리치는 19세이던 62년 고교 은사이자 7세 연상인 배틀리와 결혼했으나, 매리앤 긴터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결심했다. 그는 이혼 소송 중 긴터를 부모에게 소개한 뒤, 81년 이혼 성립 6개월 만에 두 번째 결혼을 했다. 하지만 깅리치는 2000년 22세 연하의 보좌관 캘리스터 비섹과 6년 혼외정사 끝에 세 번째 결혼을 했다.
CNN 보도에 대해 깅리치측은 법적 대응을 경고하고, 기존 해명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30년 전 냉혈한 깅리치의 이미지가 재부각되면서 공화당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깅리치는 평소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삶이 완벽하지 않았으며, 종종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해왔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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