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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보이스피싱 책임 떠넘기는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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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보이스피싱 책임 떠넘기는 금감원

입력
2011.12.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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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결국 자살했다. 어린 영혼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주변 학생들과 담당교사는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비슷한 피해가 쏟아지고 책임론이 들끓자 교사가 해명에 나섰다. “가해자들이 다른 학생들을 통해 피해학생들의 돈을 뜯는다기에 해당 학생들을 여러 차례 불러 지도했다.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주변 학생들 탓에 피해가 커졌다.” 교사는 나름 노력했으나, 이를 무시한 학생들의 책임이 크다는 변명이다.

세상에 이런 교사가 있을까 싶지만 애석하게도 금융감독당국의 최근 태도가 그렇다. 금융감독원은 26일 예정에 없던 ‘카드론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 관련 카드사 점검결과’란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6월부터 최근까지 무려 7차례에 걸쳐 자신들이 카드사에 보낸 지도내용을 일일이 나열한 뒤, 카드사들이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보이스피싱 피해가 확대됐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카드사들은 그간 피해자들의 항의에 대해 사기꾼의 농간에 어수룩하게 휘둘린 고객들의 잘못이 크다며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본인 확인절차 강화 등 조금만 신경 쓰면 될 대책마련은 인력 부족, 시스템 미비를 핑계로 미루기만 했다. 심지어 금감원이 이날 공개적으로 카드사를 압박하자, 일부 업체가 발 빠르게 피해금액 일부를 감면하겠다고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카드사들이 우선 눈치 보는 건 고객이 아니라 감독당국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금감원이 온전히 면죄부를 받아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금융회사를 지도 감독하는 막강권한을 휘두르는 금감원이 ‘공문 몇 장 던져줬으니 소임을 다했다’고 발뺌하는 건 터무니없다. 게다가 금감원이 6월부터 경고를 했다지만, 정작 업계에선 10월부터 공문이 내려와 준비기간이 한달 남짓 걸렸다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둘이 이렇게 책임회피 줄다리기를 벌이는 동안 카드론 보이스피싱은 올 1분기 첫 사례가 신고된 이후 지난달 말까지 1,999건이 이어졌고, 급기야 얼마 전엔 자살자도 나왔다.

오죽하면 카드사 관계자가 “카드론 보안과 관련된 느슨한 규정을 카드사 설명만 믿고 받아들였다가 일이 커지니까 자신들의 오판은 숨긴 채 모든 책임을 카드사에 떠넘기고 있다”고 불평을 할까.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는 ‘카드론 신청 시 카드사가 직접 전화로 확인할 것’과 같은 대책을 미리 마련하지 못한 감독 책임자로서의 자기 반성은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다.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만 책임을 떠안는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화들짝 놀라 서둘러 면피용 자료를 낸 흔적이 역력하다.

교사가 문제의 책임을 학생에게 돌리면 추후 학생들을 통솔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금감원만 모르는 것일까.

고찬유 경제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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