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먹구름, 미국은 흐림.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이 예상하는 내년도 선진국 경기 기상도다. 유럽은 재정위기에 휩싸여 끝 모를 불황의 골로 빠져들고 있고, 미국 역시 내년에도 경기회복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때문에 국내 대기업들은 내년 승부처를 신흥시장으로 잡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올해도 3분기까지 신흥 시장을 상대로 한 수출액이 전체의 72.6%를 차지했다"면서 "이런 추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신흥시장 중에서도 각별히 주목되는 곳은 아프리카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예상한 2011~2015년 경제성장률 상위 10개국 중 아프리카 국가는 에티오피아, 모잠비크 등 무려 7개국이나 된다. 특히 이집트,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 다이아몬드 꼴로 늘어선 4개국은 자원이 많고 소비시장이 크며 생산거점으로 유리해 '다이아몬드 존'으로 꼽힌다. 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선진국 경제의 저성장이 길어질 수 있어서 아프리카 시장이 매력적 대안"이라고 전망했다.
1995년 아프리카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올해 아프리카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근무하는 현지 법인 직원을 예년 2배인 1,000명으로 늘리고, 100개인 브랜드숍도 200여개로 확대한다. AS센터는 18개에서 36개로 늘리기로 했다.
LG전자도 마찬가지. 올해 중동 아프리카 지역대표 산하에 나이지리아 알제리 튀지니 3개국 법인을 신설해 아프리카 법인을 4개에서 7개로 확대했다. 또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800만 달러를 들여 연간 40만대의 TV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건립했다. LG전자 관계자는 "현지에서 TV를 생산하면 수입관세 25%를 내지 않을 수 있어 경쟁력이 올라간다"며 "이를 통해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자원 개발과 연계해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한다. 포스코는 짐바브웨에서 크롬, 석탄, 철광석 등 자원개발을 추진한다. 삼성물산 현대중공업 STX 현대종합상사 대우인터내셔널 등은 일본 캐나다 기업들과 손잡고 4년간 53억 달러를 들여 마다가스카르의 니켈 광산을 공동 개발하고 열병합 발전소의 주요 설비를 구축해 주기로 했다.
중남미와 동남아국가연합(ASEAN)도 내년에 비중이 올라갈 신흥시장으로 꼽힌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지난 21일 열린 올해 마지막 삼성 그룹 주요 사장단 회의에서 "중국 이외 신시장 개척이 절실하다"며 "ASEAN과 중남미 지역의 신시장 개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그룹도 브라질, 러시아, 중국 등 신흥 시장에 내년 투자를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내년 중 중국에서 연간 40만대 규모의 제 3공장을 가동해 현지 생산량 100만대를 넘길 예정이다. 또 연간 15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브라질 공장도 내년 말부터 가동한다.
포스코 역시 내년에 몽골, 카자흐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중국을 아우르는 U축과 북미, 중남미를 연결하는 I축을 기준으로 한 U&I 글로벌 철강벨트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동남아 최초로 구축중인 일관제철소 공사가 끝나면 2013년부터 연간 300만톤의 철강을 생산할 예정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그래도 선진국 포기 못해… 품질·디자인으로 승부
기업들의 내년 해외공략전략이 신흥시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선진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선진시장에서 통해야 '글로벌 기업'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신흥시장과는 별도로 선진국 시장공략 대책을 마련 중이다. 선진시장 공략의 핵심은 역시 품질과 디자인에 맞춰져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올해 11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103만7,028대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 증가한 실적. 특히 올 5월에는 사상 첫 미국시장 점유율 10% 돌파라는 의미 있는 성적을 남겼다. 유럽 시장에서도 11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11.7% 증가한 63만 7,210대를 판매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현대ㆍ기아차는 '글로벌 5'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최근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현대ㆍ기아차를 경계하게 된 건 미국 유럽 시장에서 품질과 디자인으로 정면 승부를 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삼성전자는 전통적으로 '신흥시장=대중제품, 선진시장=고급제품'의 투트랙 전략을 구사해왔다. 따라서 내년에도 미국 유럽 호주 등 선진시장에선 3D TV나 풀터치 스크린 폰 등 하이엔드 제품 마케팅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년에도 TV는 당연히 1위가 목표이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역시 지역별로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움직임이 발빠르다. 중대형 리튬이온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LG화학은 미 미시간주에 전기차 용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고, LG전자는 버지니아주와 태양전지 공급 계약을 맺었다. 태양광에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한화는 이탈리아 루비고 지역에 6㎿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세워, 상업 생산에 들어갔간데 이어, 미국의 태양광 회사 2곳을 인수했다. SK의 윤활유 전문 회사 SK루브리컨츠는 스페인 렙솔사와 스페인 현지에 윤활기유 합작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특히 7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의 정식 발효에 이어 내년 한미 FTA 발효를 눈 앞에 두고 있는 만큼 선진시장에서 관세감면효과를 100%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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