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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만추'와 김정일

입력
2011.12.2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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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열릴 무렵 최고 기대작은 '만추'였다. '가족의 탄생' 등으로 마니아 팬을 거느린 김태용 감독이 연출을 했고, 현빈과 탕웨이가 호흡을 맞춘다는 점만으로도 마음이 끌렸다. 게다가 이젠 보지 못하는 이만희(1931~1975) 감독의 동명 원작(1966)을 스크린에 되살린다니…. 신비감이 기대감을 더욱 부풀렸다. 개봉 날짜를 못 잡다가 현빈이 출연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인기를 등에 업고 대중을 만나게 된 과정도 극적이었다.

기대가 지나쳤을까. 분명 좋은 연기와 연출로 빚어진 영화임에도 마음에 큰 물결은 치지 않았다. 세월이 쌓은 원작의 거대한 아우라 앞에서 신생아 '만추'는 초라하게만 보여서일까. 물론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 올해의 한국영화를 꼽자면 '만추'는 분명 몇 손가락 안에 들 작품이다.

국내 영화계에서 이만희 감독의 '만추'는 하나의 신화다. 필름이 유실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불행이 수작을 신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만추'는 촉박한 시간과 프린트 복사 비용 때문에 스페인영화제에 원본 필름을 제출하고 되찾지 못하면서 한국영화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만추'는 나운규(1902~1937)의 '아리랑'(1926)과 함께 영화계가 꼭 찾아야 할 한국 영화로 꼽히고 있고, 영화인들이 꼭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됐다. 개봉 당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외국에는 잉마르 베리만이 있지만 우리나라엔 이만희 감독이 있다"고 극찬한 작품이라니 완성도에 대해 더 말해서 무엇하랴.

해를 닫으며 '만추'가 새삼 영화인들 입에 오르고 있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몇몇 영화인들에 의해 다시 호명되기도 하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죽음이 '만추'를 사람들 앞에 불러내기도 했다. 김정일은 생전 영화광으로 유명했다. "그의 개인 소유나 마찬가지인 (북한)영화 문헌고에는 1만5,000여 편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영화 필름이 보관되어 있다"고 신상옥(1926~2006) 감독은 회고록 에서 밝혔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이만희 감독의 명작 '만추'의 프린트도 있었다"고 신 감독은 같은 책에서 증언한다. 신 감독과 함께 북한사회를 오래 경험했던 배우 최은희씨도 "북한에서 '만추'를 봤다"고 종종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쪽 영화인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고, 애타게 찾고 있는 영화가 휴전선 너머에 있다면 상징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까우면서도 가까워질 수 없는 남북한의 현재를 불후의 명작 '만추'는 그렇게 우리들 마음에 투영하는지도 모른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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