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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신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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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신년 '화두'

입력
2011.12.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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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性徹) 스님 생전에 해인사 백련암을 세 번 찾았다. 고향인 경북 문경 김용사에서 마구잡이 어리광을 부렸던 코흘리개 시절을 빼고. 경북 금릉의 청암사 극락전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던 고2 때가 처음이었다. 고시공부 한다고 암자를 점령하다시피 한 대학생 형들을 이끌고 해인사까지 산길로 몇 십리를 걸었다. 한숨도 돌리지 않고 꼬박 여섯 시간 이상 단순동작으로 3,000배를 마친 다음이었다. 그때 난생 처음 화두(話頭)란 걸 받았다. "가다가 나뭇가지에 걸쳐놓거나 개울가에 던져 두지 말고 꼭 갖고 가라"던 말씀만 귀에 생생하다.

■ 잘못 쓰는 말이 말 그대로 부지기수(不知其數)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금도(襟度)'와 '화두'다. 금(襟)은 옷깃이고, 도(度)는 크기의 단위다. 직설적으로는 옷깃의 크기, 즉 몸통의 치수를 가리키고, 은유적으로 남의 허물조차 헤아려 감싸 안을 수 있는 도량의 크기를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마치 어겨서는 안 되는 '금법(禁法)'처럼 쓰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로 '말머리를 돌리다'의 말머리이자, 불교에서는 '참선을 이끄는 실마리'의 뜻인 화두를 경구(警句)나 좌우명(座右銘)의 뜻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 꽤 뜻 깊은 '화두'가 일상 언어생활에 녹아 들었으니 손을 들어 반기는 게 재가 불교도의 자세겠지만, 잘못 아는 것은 모르는 것만도 못하다는 말처럼 속이 상한다. 지난 한 해의 전체상을 직관적으로 축약하거나 신년의 다짐과 바람을 함께 담은 사자성어가 난무하는 연말이면 으레 드는 생각이다. 아니나다를까 올해도 '동심동덕(同心同德)' '유지경성(有志竟成) 등의 '신년 화두'가 떠돈다. 쉽게 '한 마음 한 뜻', '뜻 있으면 이룬다'정도로 해도 그만일 터인데, 굳이 사자성어로 하고, 뜻도 맞지 않는 '화두'라는 문패를 단다.

■ 해 넘는 고비에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자기 최면을 거는 다짐은 바람직하다. 다만 먼지 가득한 옛말을 애써 끄집어 내는 대신 어느 연속극 묘비명의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같은 맑은 우리말을 길어내자. 아니면 이런 시 한 편은 어떨까. '코 뭉개지고 입 비뚤어진/ 바보 무지렁이들아/ 이 세상 부처 아닌 생이 어디 있더냐/ 부서져 닳지 않는 삶이 그게 어디 삶이더냐/ 너야말로/ 하나밖에 없는 귀한 부처다/ 새로운 세상은 네 마음 속에서 열린다/ 한없이 어리석고 못난/ 저잣거리 중생들아'(권갑하 <운주사 미륵불이 하는 말> ).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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