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학습 교사 A(40ㆍ여)씨는 요즘 저축으로 돈 불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월 소득 95만원 중 매달 10만원을 저금하면 통장에 10만원이 추가 입금되고, 정부에서 별도로 25만원의 근로소득장려금을 넣어주기 때문이다. A씨는 10년 전 남편 사업체가 부도로 문을 닫은 뒤 자신의 소득과 기초생활보장급여로 가족을 부양해오다, 정부가 저소득층 자립 지원을 위해 작년부터 운영 중인 '희망키움통장' 가입 자격을 최근 얻었다. 그는 "3년 뒤면 1,700만원의 종잣돈을 쥘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자포자기였던 남편도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소액을 꾸준히 저금하면 원금을 두 배 이상 불려주는 '매칭(matching)'방식의 통장이 근로빈곤층의 자립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매칭은 원래 고객이나 직원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기업도 동일한 금액만큼 출연하는 사회공헌 방식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하나ㆍ신한ㆍ우리은행 등이 매칭 적금상품을 출시 중이다. 하나은행은 보건복지부 등과 협약을 맺고 지난해 4월부터 희망키움통장을 판매하고 있다. 매달 일정 금액씩 3년간 납입하면 기업들이 조성한 공익자금에서 동일 금액이 통장에 적립되고, 정부도 가입자의 근로소득에 따라 1,000~60만5,000원의 근로소득장려금을 지원해준다. 금리는 연 4.7%(고정금리)로 은행권 평균 예금금리 수준보다 1%포인트 가량 높다.
가입 조건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자 중 월 근로소득이 최저생계비의 60% 이상인 가구. 3년 간 지원금 수령은 '탈(脫)수급'이 전제다. 내년엔 조건이 더 좋아진다. 정부는 현재 가구당 월 평균 20만6,000원 수준인 장려금을 25만9,000원으로 증액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가입자들의 저축 동기가 한층 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복지부 자립지원과 백경순 사무관은 "지난달 기준 1만5,000여가구인 가입자 규모를 내년엔 1만8,000가구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며 "더 많은 저소득층에게 혜택을 주려면 정부 지원과 더불어 기업들의 적극적인 매칭기금 참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신한은행이 2007년 4월부터 판매 중인 '디딤씨앗통장'은 시설보호 및 가정위탁아동, 소년소녀가장, 공동생활(그룹홈) 아동 등이 자립할 나이가 됐을 때 학비와 주거비, 직업훈련비 등으로 쓸 돈을 매달 적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동이 후원자의 지원을 받아 매달 1,000~50만원 범위에서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만 18세가 될 때까지 정부(지방자치단체)가 3만원 이내에서 같은 금액을 추가 적립해준다. 11월 말 현재 누적 가입자는 4만9,000여명.
우리은행은 서울시와 손을 잡았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 이내인 저소득층이 매달 3만~20만원을 적립하면 시와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민간 후원기관이 협력해 동일 금액을 매칭해주는 '희망플러스통장'을 2009년부터 판매 중이다.
최근엔 매칭 통장 사업이 자치단체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서울 성동구는 올해 초 학업을 중단한 저소득층 청소년을 지원하는 '행복마중통장'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 성남시도 이달부터 장애인 125명을 대상으로 '장애인사랑 행복두배통장'을 운영한다. 하나은행 최원실 정책금융부장은 "기부가 일회성으로 끝나기 쉬운 반면, 매칭 통장은 저소득층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동기 부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매칭 통장의 수혜 범위를 대폭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찬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요즘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매칭 상품은 서민들의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될 수 있다"며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연 소득 3,000만~4,000만원 이하인 일반 서민에까지 가입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적기업인 에듀머니 제윤경 이사는 "현재 매칭 통장의 수혜자가 너무 적다"며 "금융회사들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매칭 기금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헌욱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은 "서민들이 빚을 내 집을 사고 소비를 늘리게 하는 현행 정책 방향을 저축을 장려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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