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타일업체를 운영하던 셰리언 메하니 엘 고리(39)씨 가족은 7월 모든 재산을 두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올해 초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번진 민주화 운동 때문이다. 기독교인인 그는 차도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목숨에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두 딸도 병원에서 할례를 강요당했다. 여성 할례는 아랍의 봄으로 물러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에서는 불법이었다. 그는 "이집트에서 평화로웠던 우리의 삶이 혁명 이후 오히려 위태로워졌다"고 말했다.
아랍의 봄을 적극 지지했던 아랍권 기독교인들이 역풍을 맞고 있다. 24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랍의 봄이 기독교의 겨울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아랍에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과 박해가 심해지자 미국으로 망명하는 아랍권 기독교인들도 크게 늘어났다. 이는 아랍 지역에서 민주화 후 자유선거로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득세하게 됐기 때문이다. 튀니지는 10월 이슬람주의 정당인 엔나흐다당이 제1정당이 됐고, 이집트도 현재 진행 중인 총선에서 이슬람 정치세력인 무슬림형제단과 살라피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리아에서도 수니파 반대운동이 점점 이슬람 근본주의적 성격을 띠면서 기독교를 위협하고 있다. 마크 헤필드 히브리인이민원조단체 부회장은 "중동 내 민주화 바람이 인종 청소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집트와 시리아에서는 최근 기독교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폭력사태를 우려해 성탄절 기념 공개예배 행사도 취소됐다.
종교적 박해를 못 견뎌 망명을 택하는 아랍권 기독교인들도 크게 늘었다. 이집트의 인권단체는 혁명 이후 망명한 이집트 내 기독교 분파인 콥트교도가 10만명에 달하며 미국이민국은 지난해 대비 올해 이집트 망명자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다. 미국 뉴저지 리지우드의 한 교회에는 3월부터 10월까지 이집트에서 온 망명자가 100명으로 지난해(75명)보다 많았다.
데이비드 바네트 이민전문 변호사는 "아랍의 봄 이후 기독교도들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과격 이슬람단체로부터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의사와 약사, 사업가 등 아랍지역의 부유한 기독교도가 대거 망명을 신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랍어 번역가까지 고용했다.
9월 미국으로 망명한 콥트교도 달야 아티아탈라(36)씨는 "이집트에서 운영하던 미술학원에 대한 종교적 탄압이 심했다"며 "이웃 무슬림이 학원으로 찾아와 십자가 등을 부수고 출동 경찰은 학원을 불법이라고 폐쇄했다"고 말했다.
마이클 둔 전 미국 외교관은 "이라크, 이집트 등 중동 지역의 갑작스러운 정권교체는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력한 다수의 결집으로 소수가 박해 받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집트 콥트교도는 전체 인구의 10%이며, 시리아에서도 전체인구의 8%가 기독교도다. 이라크에도 약 50만명의 기독교인이 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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