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투신자살한 대구의 중학생 A(13ㆍ중2)군 사건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 A군이 또래들로부터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했던 것은 인터넷게임 때문에 비롯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청소년 게임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25일 "B(14), C(14)군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지난 9월 중순 B군의 '메이플 스토리' 게임 아이디가 해킹 당해 아이템이 사라지고 경험치가 떨어졌다면서 이들의 A군에 대한 심한 폭행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26일 중 메이플 스토리 게임 제작사인 넥슨 측에 B군 등의 아이디 접속 기록과 아이템, 경험치 변동 상황 등에 조사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군은 유서에서 "3월 중순에 XX라는 애가 같이 게임을 키우자고 했는데 협박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매일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게임에 쓴다고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라고 썼다.
메이플 스토리는 게임을 많이 하면 할수록 게임 속 캐릭터가 성장하면서 다음 레벨로 올라가는 스토리로 구성됐다. 게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 점수와 경험치가 올라가고, 경험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레벨이 오르고 경험치는 제로가 된 뒤 다시 오르는 것이 반복된다. 얼마나 오래 게임을 하느냐가 레벨을 좌우하기 때문에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노가다 게임'으로 통하기도 한다. 한 게임 유저는 "(다른 유저에게) 돈을 주고 대신 키워줄 것(레벨을 올려 주는 것)을 부탁하기도 하고, 성능 좋은 아이템 구입을 위해서는 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B군 등은 게임 레벨을 올리기 위해 A군에게 자신들의 아이디로 게임을 대신 하게 했다. A군은 B군의 폭력과 협박에 돈을 뺏기면서 거의 매일 몇 시간씩, 어떤 날은 새벽 3, 4시까지 게임을 하기도 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3월부터 A군을 괴롭힌 B군에 이어 2학기 들어 C군이 가세하면서 가혹행위는 더 심해졌다. 9월 중순부터 A군의 휴대폰에는 이들로부터 많을 때는 하루 수십 건의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고, 그 내용은 고급 아웃도어 의류를 사 내라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게임을 독촉하는 것들이다.
9월14일 오전 1시부터 2시까지 이들은 '(형 보고 컴퓨터 앞에서) 빨리좀나와돌라캐라' '닥치고해라' '빨리해라' '지금가서샤워하고잠깨라 그리고바로겟엠ㄱㄱ' 등 1시간 동안 15차례나 A군에게 게임을 독촉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A군이 게임을 하지 않는 날에는 (부모가 시키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아이템 구입용으로 상납할 것을 요구, 25만여원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A군이 숨지기 직전 휴일에도 하루종일 '캐쉬(사이버머니) 사라' '매크로(게임능력을 높이기 위한 버그플레이의 일종) 키라'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투신 전날인 19일 오후에는 게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A군을 무차별 폭행했으며 이날 밤 11시30분 넘어서도 3차례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경찰은 이날 B, C군을 불러 대질조사를 한 결과 A군의 유서 내용 중 문구용 칼로 A군의 손목을 그으려 한 것, 라디오 선을 A군의 목에 감고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먹게 한 것 등에 대해 시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서에 나온 '물고문'을 누가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려 25일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했으나 이들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해 26일 재시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B군 등의 휴대폰과 A군의 컴퓨터 사용 내역을 분석하고, A군 아파트 CCTV를 분석해 B군 등이 A군의 집에 얼마나 자주 드나들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한 뒤 B군 등에 대해 공갈, 협박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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