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진료하는 의사한테는 수가(酬價)라는 게 적용된다. 의사의 진료 행위를 정부가 돈으로 보상해주는 제도다. 건강보험(예전엔 의료보험이라 불렸다)이 시행되면서 의사의 수입이 줄어들자 국가가 이를 보전해주는 것인데, 변호사 같은 다른 전문직이 보기엔 부러운 측면도 있을 것이다. 다른 어떤 전문직도, 국민 누구도 의사의 수가에 딴지를 걸진 않는다. 진료행위는 공공성으로 똘똘 뭉쳐진 가치 있는 일이고, 정부가 이에 대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사실 일반인에게 무슨 무슨 협회 따위는 관심밖이지만 대한의사협회는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양대 전문가 단체로 자리해 있다. 국민의 건강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다루는 개업의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까닭에서다. 그런데 8만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의협이'실망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볼썽사나운 물리적 충돌
한번 짚어보자. 내년에 출범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쓸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하려고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렸으나, 폭력과 욕설로 막을 내렸다. 의협 집행부가 내년 4월부터 정부 주도로 시행하는 선택의원제를 덥석 받아들인 부분을 젊은 의사들이 문제 삼은 것이다. 이들은 경만호 의협 회장에게 계란과 액젓을 던지는 것으로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했다. 외형적으로는 격앙된 젊은 의사들의 반발이 틀림없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현 집행부와 반대파 간의 물리적 충돌이라고 보는 게 옳다.
유례가 없는 의협 불상사를 지켜봤던 국민들은 열흘 뒤 또 다른 사단을 목격해야 했다. 의약단체들의 리베이트 자정선언에 의협이 혼자 불참한 것이다. 병원협회 한의사협회 약사회 제약협회 같은 보건의약 단체들이 모조리 모여 "부당한 금품 거래 행위를 근절하겠다"며 '리베이트 아웃'을 선언한 현장에 의협은 없었다.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모두 처벌하는 소위 '쌍벌제'를 지지하는 성격의 자리이기도 했는데 의협은 빠졌다. "의약품 리베이트가 시장경제의 한 거래 형태여서 자정선언 자체가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누가 이걸 납득할 수 있을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적 요구로 만들어진 쌍벌제를 부정하는 것 밖에 더 되겠는가.
참으로 딱한 장면들이다. 의사들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임시대의원총회 폭력 사태나 리베이트 자정 선언 불참은 따지고보면 모두 의사들의 수입과 직결된다.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을 수도 있겠다.
젊은 의사들이 몸부림치는 이유를 왜 모르겠나. "선배들은 좋은 시절에 다 해먹고 이제 후배들한테 희생을 강요한다"는 주장, 100번 일리가 있다."리베이트 근절 자정 선언은 실효성 없는 말 장난"이라는 의협의 주장 역시 논거가 약하지 않다고 본다.
관건은 의사들이 '받들고 모셔야 할' 국민이 수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해도, 그럴수록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어야 했다. 전국의 의사 대표들로 구성된 최고 의결기구인 의협 대의원총회가 의사 간의 밥그릇 싸움 현장으로 변질되고, 집행부가 나서 리베이트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떼를 쓰는 것은 아마추어의 행동이다.
회장의 리더십 회복이 관건
"의사의 시대는 갔다"는 얘기는 몇 년 전부터 나오고 있다. 의사 수가 늘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이유가 크지만 과잉 진료나 과다 보험료 청구 단속 같은 정부의 적극 개입도 무시하긴 어렵다. 그런데도 의사는 여전히 상종가다. 의대엔 최상위권 학생들이 변함없이 지원하고 있고, 의사 출신인 고 이태석 신부와 '부시맨 의사' 이재원씨의 영향인지 몰라도 의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오히려 더 따뜻해졌다.
의사는 전문성 못지 않게 사명감과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의협의 역할은 자명해진다. 의사들이 국민건강을 지키는 첨병으로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집행부와 일반 회원들이 툭하면 마찰을 빚는 다른 이익단체의 모습을 닮아선 곤란하다. 그래서 의협의 미래와 발전은 회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는데, 현실은 자꾸만 거꾸로 가고 있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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