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의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 차기 감독이 21일 선임됐다. 하지만 영 개운치 않다. 조광래 전 감독의 경질과 최강희 신임 감독의 선임 과정이 밀실행정아래 의문투성이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7일 조 감독을 경질한 후 보름 만에 신임 사령탑의 기자회견까지 한국축구의 얼굴을 바꾸는 거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협회와 기술위원장은 그 동안 불거진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과연 보름 동안 어떤 '밀담'이 오고 갔던 것일까.
'외압'에 의한 블랙코미디의 시작
블랙코미디는 경질 통보의 어긋난 경로부터 시작된다. 황보관 협회 기술위원장은 대표팀 사령탑의 거취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인물이지만 지난 7일 조 감독의 경질을 보도한 KBS보다 이 사실을 늦게 접했다. KBS 9시 뉴스에 조 감독의 경질 보도가 나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황보 위원장은 그날 오후 7시30분께 부랴부랴 조 감독을 만났다. 갑작스러운 경질 통보에 조 감독이 "기술위원회에서 의논된 이야기냐"라고 묻자 황보 위원장은 "다 아시지 않느냐"라는 모호한 답변을 남겼다.
황보 위원장은 경질 발표를 앞두고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형식적인 만남을 가진 것이다. 윗선에서 경질이 결정됐고, KBS로 먼저 흘러 들어갔다. 조 감독은 "KBS에서 황보 위원장을 만나기 이전에 연락이 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8일 황보 위원장은 "조광래 감독으로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경질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경질 결정은 5일 회장단 회의에서 내려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장단의 결정이 기술위원장이 아닌 언론매체에 먼저 전달됐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 9일 조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기술위원회가 외부의 입김에 흔들리면 안 된다"며 무한 권력을 행사하는'보이지 않는 큰 손'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기술위원장은 끝까지 '앵무새'
차기 감독을 선임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위원회가 12일 부랴부랴 구성됐다. 프로구단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가 단 1명뿐이라 '과연 7명의 기술위원들이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부터 들게 만드는 인선이었다. 13일 첫 기술위원회가 열린 뒤 황보 위원장은 "외국인 사령탑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언론들은 앞다투어 후보군들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 선임'은 여론몰이용에 불과했다.
황보 위원장은 19일 오후 대표팀 감독의 선임 기한 등 가이드라인에 대해 브리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라며 브리핑을 취소했다. 그렇지만 다음날 조중연 협회 회장은 "금주 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선임이 결정됐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21일 최강희 감독의 선임이 발표됐다. 황보 위원장은 "계약기간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최 감독이 마음을 결정한 18일에 이미 2013년 6월까지라는 계약기간은 정해졌다. 최 감독은 전북에 18일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뜻을 전했고, 19일 구단의 재가가 떨어졌다.
그 동안 거부의사를 분명히 해왔던 최 감독은 "일주일 전까지는 전북을 떠난다는 생각이 1%도 없었다. 내 판단대로 대표팀을 이끌고 갈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많다"며 외압에 의해 떠밀렸다는 인상을 줬다. 결국 최 감독은 정몽준 협회 명예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현대가(家)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협회 수뇌부들은 이전부터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이끌 적임자로 다른 후보를 점 찍어뒀다는 소문도 나돈다. 기술위원장이 수뇌부의 뜻을 전달하는 '앵무새'에 불과하다면 '협회의 시나리오'대로 대표팀 감독은 또 바뀔 수도 있다. 급조된'최강희'호가 거센 풍랑을 헤치고 브라질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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