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을 앓는 열세 살 소년과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이 만나 '특별한 달력'을 만들었다. 박도현(13·경기 의정부 호암초6) 군의 그림을 보고 미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6명의 일반인(이정은, 황지현, 조민경, 김인혜, 이희정, 이수연씨)들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박군의 그림 6점과 이를 작가 개개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그린 작품 6점을 1월부터 12월까지 나란히 배치해 달력을 탄생시켰다. 그림을 매개로 한 일종의 '대화'인 셈이다.
프로젝트 이름은'도현이의 디자이어(Desire) : 그림 그리기'다. 장애인과 일반인이 자유롭게 소통하자는 취지에서 사회복지법인 베데스다복지재단이 기획한 '태초의 갈망' 프로젝트의 첫 번째다. 판매 수익금은 지적 장애를 가진 중학생들의 '또래 멘토링' 프로젝트 지원에 전액 쓰인다.
자폐증은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거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박군의 어머니 이미영(45)씨는 "(아들과)소통이 잘 되지 않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 간 달력 제작을 함께한 작가들은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빨 달린 꽃, 바닷물에 사는 금붕어, 애완용 공룡 등으로 가득 찬 박군의 그림에서 어린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상상력을 봤다.
'달팽이 소풍가는 날'이란 주제로 10월 달력의 그림을 그린 이희정(28)씨는 "관찰력이 뛰어나고 표현 욕구가 강한 친구라고 느꼈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수연(28)씨는 박군의 그림 30여점 중 펭귄과 이글루로 구성한 그림을 선택해 12월 달력에 삽입된 '펭귄 마을'을 그렸다. "이글루가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지만 도현이를 그 안에 오래 갇혀 있게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이글루를)분해했지요."
박군이 달력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 3년 간 미술치료실에서 그의 그림을 지켜 본 미술치료사 김인선씨의 적극적인 추천이 계기가 됐다. 어머니 이씨는 "도현이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걸 워낙 좋아해요. 그림 그리는 속도도 엄청 빠르고요. 제가 장난으로 '다작(多作)'이란 호를 지어줄 정도니까요." 처음엔 어두운 색만 손에 쥐던 박군은 일주일에 2시간씩 꼬박꼬박 그림을 그린 뒤 조금씩 달라졌다. 다양한 색을 쓰는데다가, 사람 얼굴을 그려도 눈, 코, 입을 그려 넣어야 하는지 모르던 아이가 이젠 그림으로 사람의 특징을 집어 낼 줄 아는 수준이 됐다.
달력 덕분에 박군 가족은 2012년을 참 빨리 맞았다. 집 거실엔 벽걸이용, 식탁엔 탁상용이 각각 놓여 있다. 평소 겉으로 애정을 잘 표현하지 않던 한 살 위 누나도 동생의 달력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내심 뿌듯해 하는 눈치다.
어머니 이씨는 "도현이가 달력 작업에 참여한 것 자체가 우리 가족에겐큰 응원과 격려가 됐다"고 했다. "아들이 별다른 진전이 없자 주변에서 차가운 시선을 보냈을 때 힘들었어요. 이제 이런 큰 선물을 받으니 말끔히 잊혀지네요."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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