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카타르 도하의 알 가라파 경기장.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자 소말리아 여자농구 대표선수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후줄근한 경기복에 머리를 히잡으로 감싼 그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최신식 경기장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승리의 순간을 만끽했다. 그들은 홈팀 카타르를 67대 57로 이겼다. 나흘 전 이집트에게 90대 24로 대패하며 치욕을 당한 소말리아 대표팀이 드디어 첫 승을 거둔 순간이었다.
남들은 예선 1승이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소말리아 대표팀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일군 값진 승리였다. "여자가 운동하는 것은 악마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이슬람 단체의 살해 협박에 시달려야 했던 말 못할 고충이 선수들의 머리에 스쳤다. 22일 미국 CNN방송은 여성들에게 스포츠를 허락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아랍권 최대 스포츠대회인 아랍게임(아랍국들이 4년마다 치르는 종합대회)에서 고국에 값진 승리를 안긴 소말리아 여자농구 대표팀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1960년 독립한 소말리아는 가난하긴 했어도 여성의 운동을 금할 만큼 몰상식한 나라는 아니었다. 농구는 소말리아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70년대에 첫 여자팀이 생겼고 87년부터는 국제대회에도 꾸준히 참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알카에다와 연계된 원리주의 이슬람 테러단체 알샤밥이 등장하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라디오 청취를 금할 정도로 이슬람 경전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알샤밥은 스포츠를 반이슬람 행위로 규정해 운동 선수에게 위협을 가했고 여성 운동선수들에게는 운동을 계속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다.
그러나 여자농구 대표팀은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남몰래 혼자 연습을 하던 선수들은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던 선수들도 아랍게임 출전을 위해 다시 뭉쳤다. 연습 장소는 수도 모가디슈의 경찰청이었다. 밖에서 연습을 하다간 치안이 허술한 모가디슈에서 언제 알샤밥의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서였다.
그들은 이번 아랍게임에 출전해 2승 3패의 성적을 거두며 출전 6개국 중 4위를 기록했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다. 승리를 반신반의했던 소말리아 사람들은 요즘 만나면 온통 여자 대표팀이 아랍 최대 부국 카타르와 쿠웨이트를 꺾은 얘기를 화제에 올리고 있다. 하기 예베로우 소말리아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은 "여자 대표팀의 선전이 치안 부재, 정치적 불안정, 자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 나라에서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어긋난 신념 탓에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사회적 활동이 금지됐던 여성들이, 91년 이후 기나긴 내전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최빈국에 참으로 오랜만에 희망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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