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태양을 삼켰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시베리아에 사는 이누이트는 개의 귀를 잡아당겨 개가 짖게 했다. 다른 지역에선 북과 징을 크게 울렸다. 이들은 이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면 깜짝 놀란 괴물이 태양을 토해낸다고 여겼다. 그 괴물은 전 세계 곳곳의 민속신앙에서 늑대, 호랑이, 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옛 사람들에게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日蝕)은 불경한 일이었다. 신라, 고려 등 고대 한국사회 역시 일식을 나쁘게 여겼다. 왕을 뜻하는 태양이 사라지는 건 하늘이 내린 사람인 왕이 빛을 잃는 것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일식은 천문학이 발달하고서야 비로소 불경한 옷을 벗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얀 옷을 입고 북을 두드리지 않는다. 대신 일식관찰용 안경을 들고 나선다. 멋진 쇼를 보려고.
내년 5월 21일 약 150분 동안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어두워진다. 한국천문연구원이 발표한 '2012년 주요 천문현상 예보'에 따르면 이날 부분일식이 일어난다. 부분일식은 달이 해를 가려 해의 일부만 보이는 현상이다. 이 때 태양은 동그랗지 않고 눈썹처럼 보인다.
부분일식은 5월 21일 오전 6시 23분부터 8시 48분까지 약 2시간 25분간 진행된다. 태양이 가장 많이 가려지는 시각은 서울 기준 오전 7시 32분. 천문연의 조성기 박사는 "일식은 1년에 한 번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 흔한 쇼"라며 "조선시대에만 일식이 261번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내년엔 '우주쇼'가 여럿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100여년 뒤인 2117년 12월에야 볼 수 있는 '빅쇼'가 현충일인 6월 6일 펼쳐진다. 금성이 태양 표면을 가로지르는 진귀한 천문현상이다.
금성은 달에 이어 밤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아 샛별 또는 개밥바라기로 불리는 행성. 수성과 지구 사이에 있다. 지구 안쪽에서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지구에선 태양 위를 지나는 금성을 볼 수 있다. 이때 금성은 아주 작은 검은 점으로 보인다. 태양은 금성보다 약 109배 크다. 한국에선 이날 오전 7시 9분부터 오후 1시 49분까지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2004년 이후 8년 만이다. 그 전에는 1882년에 일어났었다. 조 박사는 이 현상의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금성은 지구보다 3.39도 더 기울어져 공전해 같은 방향에 있더라도 궤도가 잘 겹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현상이 일어날 때 밤 시간대인 유럽 미국 등에선 관측할 수 없다. 맨눈으로 태양을 바라보면 시력이 나빠질 수 있어 일식관찰용 안경을 착용하거나 카메라 필름을 눈에 대고 보는 게 좋다.
7월 15일에는 목성이 숨바꼭질 장난을 친다. 태양계 행성 중 가장 큰 목성이 그보다 40배 작은 달 뒤에 숨는 '마술쇼'다. 이날 낮 12시 50분경 서쪽 하늘에선 목성이 달 뒤에 숨었다가 1시간 후 다시 달 옆으로 나오는 '목성식'이 일어난다. 달이 목성을 가릴 수 있는 건 지구에선 목성이 달보다 훨씬 멀리 있어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달은 맨눈으로 볼 수 있고, 목성은 구경 50㎜인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하다.
불교신자라면 흥미로워 할 일도 있다. 내년 한국과 중국의 석가탄신일은 꼭 한 달 차이가 난다. 음력이 부린 '꼼수', 윤달 때문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보고 날짜를 새는 음력에서 1년은 354일. 양력보다 11일 적다. 양력에서 모자라는 11일을 모아 3년에 한 번, 음력에 한 달을 더 새는 게 윤달이다. 날짜와 계절이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내년 한국에선 음력 3월이 두 번 이어진다. 음력 1월, 2월, 3월, 윤3월, 4월…. 윤3월은 양력 4월, 음력 4월은 양력 5월에 해당돼 한국에서 석가탄신일(음력 4월 8일)은 양력 5월 28일이다. 한국보다 1시간 느린 중국에서 윤달이 4월에 이어진다. 음력 4월은 양력 4월, 윤4월은 양력 5월로, 윤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중국의 석가탄신일은 양력 4월 28일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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