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매섭던 1986년 1월 말, TV를 통해 생중계 된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의 폭발 장면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을 것이다. 우주 최강국이 자신 있게 쏘아 올린, 세계 최초로 일반인 초등학교 여교사를 포함한 7명의 우주인을 태운 우주왕복선이 출발 73초 만에 공중에서 허무하게 사라졌다. 대서양에 추락한 우주선의 잔해물은 수개월에 걸쳐 수집되었다. 폭발의 원인은 연료의 누출을 막기 위해 로켓의 이음새에 사용한 오링(O-ring)이 설계의 결함으로 밝혀졌다. 2002년 콜롬비아 호의 귀환 중 발생한 폭발사고도 선체 외부의 내열타일이 이탈하는 단순한 원인 때문이었다. 작은 부품 하나의 결함으로 오랜 기간의 노력과 엄청난 규모의 투자, 소중한 생명을 잃은 것이다.
챌린저 호의 오링과 컬럼비아 호의 내열타일처럼 전체 기술의 성패를 결정짓는 작은 부품들에 관련된 기술을 '요소기술'이라 한다. '사물의 성립이나 효력, 발생 따위에 꼭 필요한 성분'을 의미하는 '요소'라는 단어에서 추측할 수 있듯, 요소기술은 전체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기술의 기초를 충실하게 다지기 위해선 먼저 요소기술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 필요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기계에는 베어링이라는 요소기술이 들어있다. 베어링은 운동하는 물체를 받쳐 마찰을 줄임으로써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해주는 부품이다. 세탁기모터에서부터 자동차의 바퀴, 비행기의 제트엔진, 첨단 로봇의 구동부와 인공관절에 이르기까지 베어링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대표적 베어링 개발업체조차 90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며 독일 등 해외 기업에 인수합병 되는 등 베어링 기술개발은 침체 위기에 놓여있다. 현재 고가의 고성능 베어링은 국내에서 거의 생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 독일과 일본에서 수입 된다.
6ㆍ25 이후 우리나라는 이웃 일본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해 자동차, 선풍기 등의 완제품을 만들어 왔다. 저가의 기어나 베어링 등 단순한 부품조차 자체적으로 개발할 능력이 없었기에 혹시나 원자재나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와 관련한 연구개발에 매진했고, 그 결과 작은 부품들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많은 요소부품들이 선진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요소기술을 수입하는 것이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 요소부품들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의 경제적 여파에 영향을 적게 받는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짧은 기간에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장기간의 연구개발을 포기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극심한 세계 경제 불황속에서도 그 위기를 피해 가고 있는 독일과 일본이 첨단 요소부품을 자체 개발하고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을 꾸준히 육성해 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육성은 국민에게 최첨단기술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쉬운 전자통신, 나노, 바이오 등에 치우쳐있어 기본을 탄탄히 하는 요소기술 개발을 돌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벽을 견고하게 쌓으려거든 주춧돌부터 튼튼히 놓아라.'라는 격언이 있다. 첨단기술의 발전을 이루려면 이를 구성하는 요소기술 발전이 전제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김태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KIST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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