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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활동 박성수씨 "구럼비바위, 그 수억년의 추억을 폭파해야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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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활동 박성수씨 "구럼비바위, 그 수억년의 추억을 폭파해야만 합니까"

입력
2011.12.2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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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일 해군은 제주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높이 3m, 길이 200m의 펜스를 세웠다. 마을과 바다를 잇던 길은 막다른 골목이 됐다. 이제 강정마을의 상징인 구럼비바위를 보려면 해안가를 따라 1km쯤 떨어진 강정포구까지 가야 한다.

"구럼비바위 틈에서는 한라산 용천수가 솟아오르는데, 마을 주민들은 이를 '할망물'이라 부르며 신성하게 여겼지요. 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마시면 아이가 생기고, 아픈 아이가 마시면 낫는다고 했어요. 이 물로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6개월째 강정마을에 머물며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을 해오고 있는 박성수(38)씨가 포구의 끝에서 바다 너머를 가리켰다. 길이 1.2km, 너비 150m의 검은 용암너럭바위가 겨우 보였다. 선사시대 삶의 흔적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이 바위는 이제 더 이상 마을의 것이 아니라는 듯 펜스와 포크레인으로 둘러싸여 있다.

"저 바위에는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층층고랭이 같은 멸종위기종들이 살고 있어요. 최근엔 해군이 공사 과정에서 흘러 나오는 토사를 막기 위해 앞바다에 설치한 오탁방지막에 희귀종 돌고래들이 갇히는 일도 일어났고요." 박씨는 "해군기지 건설이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강정마을에 온 것은 지난 7월 15일. 동료 환경운동가들이 "강정마을로 오라"고 유랑 중이던 그를 급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박씨는 2002년 목포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약 1년간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했지만 "시혜적 복지로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 두고 활동가로 나섰다. 당시 고향인 군산에서 추진된 새만금간척사업은 그가 환경 문제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고향 사람들이 이해 관계에 따라 갈라져 싸우고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해야 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본 그는 "더 많이 소유하고 안주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사회적 약자와 환경에 대한 폭력을 낳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2006년부터 텐트, 쌀, 냄비 등 생필품만을 넣은 25kg짜리 배낭을 메고 걸어서 전국을 유랑한 것도 이를 반성하기 위한 뜻이라고 했다. 그는 전국을 유랑하며 초등학생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활동을 시작했다. 전남 영광을 기점으로 경남, 전북 충남을 통과해 경기, 강원으로 올라갔다가 경북으로 내려 오며 지난 5년간 110여개 시군구를 거쳤다. 유랑을 통해 환경에 대한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 인가가 없는 강원 산간에서 몇 날 며칠 길가의 산딸기를 따 먹으며 기우는 해, 바람 소리, 야생동물들을 벗 삼아 걸을 때에는 "몸이 붕 뜨는 것처럼 자유로웠고" 도로 건설을 위해 파헤쳐진 산을 보면 화가 났다. 강정마을 소식을 들은 6개월 전에는 울릉도에 갔다 경남으로 와 밀양을 지나던 중이었다.

제주에 도착한 박씨를 맞은 것은 경찰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 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하는 장면이었다. 인간의 일은 품이 넉넉한 한라산, 키가 10m가 넘는 야자나무, 평화로운 구럼비바위와 범섬에 비해 초라하고 슬펐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박씨는 그날로 마을회관 4층에 텐트를 쳤다. 이후 매일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블로그에 올리고 1주일에 1~2차례 항의 집회에 참여하는 등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8월과 11월에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굳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의 환경은 한번 파괴하면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유일한 바위 습지인 구럼비바위를 없애야 되겠습니까."

지난 1일 해군기지 건설 시공사가 서귀포경찰서에 세 번째로 제출한 구럼비바위 발파 신고서가 저류지, 침사지 등을 마련하라는 조건으로 보류된 후 강정마을은 폭풍전야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한두 달 내 구럼비바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마을의 역사와 공동의 기억도 화약 연기에 묻혀 버릴지 모른다. 집집마다 내걸린 노란 '해군기지 건설 반대' 깃발이 세찬 바닷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박씨는 "인간의 눈은 왜 이렇게 좁고 얕을까요"라고 물었다.

무엇보다 박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이번 일로 "한 집 건너 사촌이던 마을 공동체가 부서졌다는 점"이다.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기 시작한 2007년부터 강정마을 주민들은 건설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박씨는 "서로 다른 입장이라는 이유로 이웃, 친척끼리 욕을 하고 영영 등을 돌린 경우도 獵?며 "만약 다행히 해군기지 건설이 취소된다고 해도 마을 내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처를 입은 주민들의 삶은 누가 책임질 건가"라고 되물었다.

서귀포=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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