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악평' 명작들이 이겨낸 가혹한 쓴소리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악평' 명작들이 이겨낸 가혹한 쓴소리들

입력
2011.12.23 12:39
0 0

악평/빌 헨더슨, 앙드레 버나드 편집ㆍ최재봉 옮김열린책들 발행ㆍ264쪽ㆍ1만2000원

"조야하고 야만적인 작품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라면 아무리 상스러운 사람들이라도 참아내지 못 했을 것이다. 어떤 술 취한 야만인이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셰익스피어의 <햄릿> 을 두고 한 악평이다. 20세기 초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는 더욱 무참한 악평들을 견뎌야 했다."바보 같은 이야기다.""다소 느슨하고 다소 물렁물렁하며 조금 지나칠 정도로 인위적이다. 무시해도 좋을 소설에 속한다." 미국 자유시의 선구자인 월트 휘트먼의 <풀잎> 에는 "돼지가 수학을 모르는 것만큼 휘트먼은 예술에 생소하다" 등 모욕에 가까운 평도 쏟아졌다.

출판 편집인 빌 헨더슨과 앙드레 버나드가 함께 엮은 <악평> 은 지금은 명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에 쏟아졌던 악평을 모은 책. 출간 당시의 신문 서평이나 비평서, 일기, 편지 등에 언급된 가혹한 평가를 추려서 소개한 것이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당대 서평가 혹은 출판인들의 오판을 엿보는 재미. 허먼 멜빌의 <모비딕> 을 "어린이 책 시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출간을 거절한다거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에 "전반적인 간 질환의 또 다른 증상"이라고 험담을 퍼붓는 모습에선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책은 서평가들의 어리석음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를 "허세가 많다. 상스럽다. 일급의 작가라면 글쓰기에 대한 존중 때문에 이렇게 속임수를 쓰지는 않는다"고 악평한 이는 버지니아 울프다. 위대한 작가도 다른 위대한 작가를 몰라 본 것이다. 특히 명작에 대한 악평은 상찬만 이뤄지는 명작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성모독적 쾌감도 은근하다.

결국 명작도 악평의 비바람을 제대로 견뎌내야 오래 살아 남는 법. '주례사 비평'이라 불릴 만큼 호평만 가득한 국내 현실을 생각하면 오판을 감수하는 소신 있는 악평의 부재가 아쉽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