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평/빌 헨더슨, 앙드레 버나드 편집ㆍ최재봉 옮김열린책들 발행ㆍ264쪽ㆍ1만2000원
"조야하고 야만적인 작품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라면 아무리 상스러운 사람들이라도 참아내지 못 했을 것이다. 어떤 술 취한 야만인이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셰익스피어의 <햄릿> 을 두고 한 악평이다. 20세기 초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는 더욱 무참한 악평들을 견뎌야 했다."바보 같은 이야기다.""다소 느슨하고 다소 물렁물렁하며 조금 지나칠 정도로 인위적이다. 무시해도 좋을 소설에 속한다." 미국 자유시의 선구자인 월트 휘트먼의 <풀잎> 에는 "돼지가 수학을 모르는 것만큼 휘트먼은 예술에 생소하다" 등 모욕에 가까운 평도 쏟아졌다. 풀잎> 위대한> 햄릿>
출판 편집인 빌 헨더슨과 앙드레 버나드가 함께 엮은 <악평> 은 지금은 명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에 쏟아졌던 악평을 모은 책. 출간 당시의 신문 서평이나 비평서, 일기, 편지 등에 언급된 가혹한 평가를 추려서 소개한 것이다. 악평>
우선 흥미로운 것은 당대 서평가 혹은 출판인들의 오판을 엿보는 재미. 허먼 멜빌의 <모비딕> 을 "어린이 책 시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출간을 거절한다거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에 "전반적인 간 질환의 또 다른 증상"이라고 험담을 퍼붓는 모습에선 웃음이 절로 나온다. 월든> 모비딕>
하지만 책은 서평가들의 어리석음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를 "허세가 많다. 상스럽다. 일급의 작가라면 글쓰기에 대한 존중 때문에 이렇게 속임수를 쓰지는 않는다"고 악평한 이는 버지니아 울프다. 위대한 작가도 다른 위대한 작가를 몰라 본 것이다. 특히 명작에 대한 악평은 상찬만 이뤄지는 명작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성모독적 쾌감도 은근하다. 율리시스>
결국 명작도 악평의 비바람을 제대로 견뎌내야 오래 살아 남는 법. '주례사 비평'이라 불릴 만큼 호평만 가득한 국내 현실을 생각하면 오판을 감수하는 소신 있는 악평의 부재가 아쉽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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