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체들은 지금 폭발직전이다. 가격을 인상했다가 며칠도 못돼 철회하는 상황이 계속 발행하고 있기 때문. 겉으론 "정부의 물가안정시책에 협조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정부의 압박에 의한 것이란 건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식품업체로선 원가상승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수익이 악화되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요금(공공요금)은 다 올리면서 민간요금 그것도 식음료 가격만 통제하는 데 발끈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이후 롯데칠성음료 오비맥주 풀무원 등 음식료 업체들이 가격인상을 발표했다가, 곧바로 철회하는 해프닝이 이어지고 있다.
22일 풀무원은 두부와 콩나물 등 10개 품목 153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7% 올린다고 했다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번복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원가 상승 압박이 심해 10개 품목의 가격을 조정하려 했으나 서민경제 부담을 완화하고 설 물가 안정에 이바지하기 위해 가격 인상을 유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지만, 가격인상 발표 후 정부로부터 직간접적 '협조'요청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인상발표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 설까지 특별 물가관리를 지시한 터여서, 풀무원은 어쩔 수 없이 번복할 수 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달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등 20종의 출고가를 올렸다가 10일 만에 종전 가격으로 되돌렸다. 오비맥주 역시 카스 OB골든라거 카프리 등 맥주 출고가를 7.48% 올리겠다고 밝혔다가 사흘 만에 인상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정부요청에 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값을 올린 곳도 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유업체들은 지난 8월 원유가격이 ℓ당 130원 오른 후에도 정부눈치를 보느라 2달 동안 소매가격을 인상하지 못했다. 누적적자에 어쩔 수 없이 10월 중순 10% 인상을 추진했으나 정부 반발에 다시 유보됐고, 결국 10월 말 9% 인상률로 낮추는 선에서 '정부승낙'을 얻어 가격을 올릴 수 있었다.
사실 식품업계는 도저히 값을 올리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풀무원의 경우 지난해까지 매년 5~6%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지만, 원재료의 50%를 차지하는 콩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올해는 3분기까지 1%대에 그치고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식품은 전자나 자동차와 달리 영업이익률이 아무리 높아도 5% 전후에 불과하다"면서 "곡물가 유가에 환율까지 올라 원재료 가격부담이 커졌고 이로 인해 적자까지 내는데도 값을 못 올리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비해 정부는 적자누적을 이유로 공공요금은 계속 올리고 있다. 전기요금은 1년에 두 번이나 올렸고 가스요금 고속도로통행료 광역버스요금 등도 모조리 인상됐다. 민간요금 역시 통신료는 겨우 기본료 1,000원 인하에 그쳤고, 기름값은 더 이상 강제인하를 포기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식품업계에선 "만만한 게 우리냐"는 불평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자기들 올릴 건 다 올리고, 생활비에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통신료 기름값은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면서 고작 두부 콩나물 콜라 값만 잡으려 한다"면서 "시기의 문제일 뿐, 눌린 가격은 결국 오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