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남측의 조문단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한편 우리 정부의 민간 차원 조문 불허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야만 행위”라고 비난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의 우회적인 조의 표시와 민간 차원의 조문 불허 방침에 대해 처음으로 내놓은 반응이다. 이에 따라 전환점을 맞은 남북관계에서 조문 문제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다’는 논평을 통해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남조선 단체들과 인민들의 조의 방문길을 막지 말아야 하고 당국도 응당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이어 “(남측은) 공식 애도와 조의 표시를 부정하고 주민들을 위로한다는 식으로 불순한 속심을 드러냈다”면서 “남조선 당국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북남 관계가 풀릴 수도,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또 ‘남측 조객들에 대한 우리의 성의 있는 조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우리의 해당 기관들은 조의 방문을 희망하는 남조선의 모든 조의대표단과 조문사절들을 동포애의 정으로 정중히 받아들이며 개성육로와 항공로를 열어놓는 조치를 취하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류우익 통일부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남북관계발전특위 전체회의에서 “민간 조문단 확대에 대해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 20일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대해서만 제한적 조문 방북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힌 데서 변화가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같은 입장 차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모색되던 남북 유화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 대남선전 매체의 입장 표명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갑식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신문이 아니라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를 통해 나온 주장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전면적인 대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기 보다는 남한을 한번 떠보기 위한 양동 작전의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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