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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독재자의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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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독재자의 호칭

입력
2011.12.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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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 국가원수가 얼마 전 저항군에 의해 처형된 뒤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소개한 일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국정원 직원의 첩보활동으로 양국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있던 지난해 가을 대통령 특사로 현지에 간 그가 문제를 풀 수 있었던 직접적 실마리는 호칭이었다. "신격화된 카다피가 '왕중왕' 호칭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주니까 한국기업의 미수금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다피에게는 이외에도 '형제의 이맘(아랍형제국 전체의 지도자라는 뜻)''혁명의 지도자' 등 다양한 호칭이 붙여졌다.

■ 지도자에 붙는 호칭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현대사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이디 아민 우간다 전 대통령에 대한 것이다. '각하, 원수, 모든 생명의 탁월한 지도자이시며, 모든 지상동물과 바다 물고기들의 신이시며, 좁게는 우간다에서 넓게는 아프리카에서 대영제국을 무찌른 정복자'가 그것이다. 거구의 헤비급 복서 출신으로 무하마드 알리와의 경기를 제안하는가 하면, 미신에 취해 어린 아들까지 살해하는 등 숱한 악행과 기행으로 정신증세까지 의심 받던 그답다. 그는 이 말 같지 않은 긴 호칭을 모든 공식 문서의 자기 이름 앞에 명기토록 했다.

■ 그런데 호칭의 요란함으로만 보자면 그에 못지않았던 이가 김일성 북한주석이다. 1970~80년대 북한 공식 저작물의 머리말은 무조건 그의 호칭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용하면 이런 식이다. '천재적 맑스-레닌주의자이시며,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의 탁월한 영도자이시며, 혁명의 영재이시며, 수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우리 당과 인민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이걸 고스란히 아들이 물려 받았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 천출(하늘이 낸) 명장, 민족의 위대한 태양, 백두광명성, 불세출의 영도자,….'

■ 당장 김정은의 호칭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샛별장군' '청년대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즉시 '위대한 영도자'로 뛰더니 '천출위인' 등 극상의 수식이 더해지고 있다. 독재자의 호칭은 대개 '자기애적 인격장애', 즉 지나친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표출일진대 그가 벌써 그 단계일 리는 없다. 다급한 정통성 구축작업의 일환일 것이다. 걱정되는 건 숱한 전례에서 보듯 이런 과대호칭은 과대망상을 키워 점차 현실감을 잃게 만든다는 점이다. 북한의 발전과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냉정한 현실적 안목을 가진 이가 절실한 때인데.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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