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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시골 장터에서 기타 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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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시골 장터에서 기타 치는 남자

입력
2011.12.2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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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작은 면소재지에 낡고 오래된 장터가 있지요. 장날이 되어도 장꾼이 오지 않아 쉬엄쉬엄 늙어가는 장터지요. 장터 주변으로 면에서 유일한 시골 다방, 경운기나 오토바이를 수리해주는 곳, 즙을 짜서 파는 천막가게 등이 전부지요. 그 장터에 가끔 기타를 치는 남자가 있지요.

들에서 농사일을 하다 잠시 나온 듯, 군데군데 흙이 묻은 남루한 복장으로 낡은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기타를 치지요. 나이가 저와 비슷할 것 같았지만 그의 연주를 방해하지 않고 싶어 아직 통성명을 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그는 제가 자신의 연주를 듣기 위해 빠른 길을 두고 일없이 장터로 둘러 가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주변 풍경과도, 그 사람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터의 기타지만 텅 빈 장터를 지나갈 때 들려오는 기타 소리는 기쁨을 주지요. 누구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익숙하게, 정성껏 한 곡을 연주하곤 이런저런 제 일을 하다 여유가 나면 또 기타를 치지요.

장터의 기타라고 뽕짝이나 흘러간 옛 노래를 연주하는 건 아니지요. 가지고 있는 클래식 기타에 맞게 남자는 클래식을 연주하지요. 오늘은 그에게 성탄 인사를 하고 정중하게 조용한 캐럴 연주를 부탁하고 싶네요. 그의 기타 연주 같은, 시인을 간절하게 꿈꾸는 춥고 가난한 누군가에게 신춘문예 당선 통보 같은 성탄 선물을 전해주고 싶은 날이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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