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생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 번째 부인인 고영희(2004년 사망)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은 우상화 작업을 벌이면서도 고영희는 전혀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김씨 왕조 가계의 '혈통'에 집착하는 북한으로선 이례적인 모습이다. 또 김 위원장의 생모 김정숙이 '항일운동 가문 출신의 백두의 여장군' 등으로 우상화했던 것과 대비된다.
일단 북한은 '고영희의 성분과 경력 등을 봤을 때 그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가뜩이나 취약한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53년 일본에서 태어난 고영희는 북한 주민들이 '째포'라고 비하하는 북송 재일동포 출신이다. 출신 배경도 북한이 선호하는 '혁명가 집안'과 거리가 멀다. 그의 아버지는 제주도 출신의 재일동포 유도선수 고경태로, 60년대 초반 대규모 북송 때 가족을 데리고 북한으로 갔다.
고영희가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부인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미모가 출중했던 고영희는 만수대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김 위원장의 눈에 들어 70년대 중반부터 김 위원장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과 고영희의 '애정사'가 드러나면 부인만 네 명을 둔 김 위원장의 여성 편력과 문란한 사생활이 주민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 생전에도 고영희의 존재를 꽁꽁 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김정은은 고영희가 아니라 백두 항일 혈통을 물려 받은 고모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손에 자랐다'고 선전해 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화하고 난 뒤에는 고영희 우상화도 결국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의 모계를 끝까지 빈 자리로 남겨 둘 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영희는 김 위원장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다. 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약 30년간 김 위원장과 함께 살며 정철, 정은, 여정 등 2남 1녀를 낳았다. 고영희는 98년 유선암에 걸려 유방을 절제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왕의 여자' 자리를 빼앗길 것을 걱정해 항암 치료만 받겠다고 버티다 암이 재발해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김정은을 후계자 자리에 앉히기 위해 김정은의 이복 형인 김정남을 적극 견제했다는 설도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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