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북 정책의 기조 변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에 따른 한반도 상황 변화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외교안보라인 내부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대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대북 정책의 선택지를 넓히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를 촉발한 천안함∙연평도 도발의 '원인 제공자'이자 '최종 명령자'인 김 위원장이 사망한 만큼 '선(先) 북한 사과 후(後) 대화'의 원칙에만 집착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히려 위기를 맞아 불확실성이 커진 북한에 안심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조기 안정과 긍정적 변화를 유도해 비핵화와 개혁∙개방이라는 대북 정책의 목표에 다가서자는 전략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2일 "대북 정책 기조 변화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 외교안보라인이 완전 합의한 상황은 아니지만 큰 방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역에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하고 고친다'는 의미의 수시변혁(隨時變革)이란 말이 있다"며 "이는 시류에 영합하라는 말이 아니라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대처하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부는 최근 인도적인 북한 지원을 재개하는 등 이미 천안함∙연평도 도발 직후의 경직된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심스럽게 대북 정책 변화를 모색해 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재의 대북관계는 인도적 지원과 정치∙군사적 대화, 비핵화 대화 등 3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선(先) 사과에 연계된 것은 정치∙군사적 대화로 다른 두 트랙은 이미 풀어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라인의 대북 원칙론자(강경론자)들도 대북 정책 변화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의 상황이 아직 불확실한 만큼 정책 기조 변화를 결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어떤 남북관계를 원하느냐, 비핵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정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옵션(선택지)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체제가 (대남정책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정해 나오는지를 봐야 대응 전략을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냐"면서 "지금은 관망 모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의 비핵화와 긍정적 변화가 대북 정책의 목표"라며 "(기존의 대북) 원칙과 수단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는 상황 변화 추이를 보며 점진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북 정책 전환은 상황 변화를 보며 추진할 사안"이라며 "우선은 내년 신년사에 나타날 정부의 북한 상황 인식과 남북관계 방향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장례 정국이 지난 뒤 남북 접촉과 주변국과의 논의를 거쳐 대북 조치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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